내 몸속에는 오장육부가 들어있다. 오장은 다섯 개의 꽉 찬 장기를, 육부는 속이 비어 있는 여섯 개의 장기를 말한다. 오장은 혈액과 기, 정신과 감정을 조절하는 기관이고, 육부는 소화나 배설 그리고 순환을 담당한다고 동양의 고서 <황제내경>에 소상히 적혀있다고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들었다.
나는 오랜 기간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 꿈은 제가끔이지만 놀랄 만큼 생생하고 현실감이 있어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한 때는 꿈을 꾸다가 문을 열고 뛰쳐나온 적도 있다.
겁이나 두려움의 대상은 주로 꿈에 많이 등장하는데, 존재일 수도 있고 특정 상활일 수도 있다. 그 근원을 명확히 짚어 책임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안온한 삶을 살 수 없었던 유년의 기억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을 뿐이다.
한의학에서는 두려움과 겁이 많은 것을 소담(小膽)하다고 하는데, 이는 담대(膽大) 혹은 대담(大膽)과 대척점에 있는 말이다. 담은 쓴맛을 내며, 두려움과 용기의 상태를 관장하는 장기다. 몸 안의 작은 쓸개를 허투루 다루지 않고 오장의 범주에 넣어 철학적으로 해석한 동양의학의 깊이에 놀란다.
나는 내 장기의 지난한 고통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의 몸 안 장기들이 지쳐 있다는 생각은 반복되는 경험으로 뚜렷해졌다.
어느 날 아침, 두 손바닥을 펼쳐 보니 산화철처럼 붉고 두터운 줄이 선명히 나 있었다. 집 안에는 녹이 묻을 만한 물건이 없었지만, 손바닥에 남은 연갈색 자국과 함께 쇠비린내는 종일 가시지 않았다. 손바닥에 녹물이 묻은 흔적은 의심의 여지가 충분했으며 기필코 증명되어야 할 그 무엇이었다.
퇴근길에 오래된 놀이터가 있어 처음으로 올라가 보았다. 재건축이 시급한 아파트 단지 내 낡은 놀이터는 아이들이 놀지 않는 곳이었다. 그네에 앉아 줄을 잡고, 철봉에 잠시 매달려 보고, 혼자 시소를 타 보았다. 혼자 노는 놀이터는 적막했지만, 무엇보다 나의 두 손바닥에 남은 산화철 자국이 더욱 선명해졌음을 확신했다.
내 기억에 없는 내가, 간밤에 그 놀이터로 불려 나가 잠시 놀다 왔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는 이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잠시 소름이 돋았다.
한의사는 심장과 간 기능이 약한 내가 일시적인 수면 장애와 몽유병 증상을 겪었을 가능성을 조심스레 진단했다. 몽유병은 수면 중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현상으로, 나의 악몽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 늘 기운이 부족하고 쉽게 피로하며 두통을 호소하던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몸은 회복 탄력성이 강해 스스로 균형을 맞추려 합니다. 오장육부도 최악을 향하지 않고, 최선을 향해 변화할 것입니다. 여기서 ‘선’이란 탁월한 상태를 뜻합니다. 당신의 몸은 분명히 최선을 향할 것입니다.”
그 말에 나는 위로받았다.
동양 의술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내 몸은 분명 지쳐 있었다. 심장은 나에게 말을 건다. 온몸에 신생하는 피를 보내주고 나를 회복시켜 줄 것임을.. 꿈에서 약속했고 그리 되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내 몸이 보내는 최선의 힘이 내 안에서 천천히 깨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고, 몽유병도 겪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