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마음에 남은 아이

by 이채이

정약용과 그 일족에 대한 글을 읽는 날은 심란하다. 그들의 삶 속에 얽힌 박해와 배신, 생존과 몰락의 기록은 두물머리의 잔잔한 물빛 그리고 강의 합수와 묘하게 어긋난다.

매년 두어 번은 경기도 마재의 두물머리 가에 가는데, 그곳이 정약용의 고향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이 만나는 한강의 상류다. 그곳에 정 씨 형제의 생가터와 실학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나는 19세기의 초반에 벌어진 천주교와 서학의 박해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 다만 역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여러 갈래로 꼬여있던 정약용 선생의 경이롭고도 비참한 생의 흔적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1801년의 신유박해로 멸문지화를 당하거나 살아남는 자, 참수를 당하거나 노비가 된 혹은 노비에 가까운 비천한 삶을 보면서 그는 살아남을 치욕의 이유를 찾았다.


누구는 배신이라 했고 누구는 배교라고도 했다. 모진 고문 끝에 세례 준 자를 실토해야만 하는 상황이 배교라면 맞는 말이다. 신의를 저버리고 수많은 목숨을 죽이고 내가 기어이 살아남는 것이 배신이라면 맞다.

기필코 살아남고 싶은 자가 다른 살아남고 싶은 자를 밀고하는 시절, 꼬리가 꼬리를 먹고 흐르는 피마저도 마셔야만 하는 것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때. 그들의 시대는 그러했다.


정약용은 멀리 강진으로 유배 갔다. 강진은 한양에서 먼 곳이었다. 그는 유배지에서 학문과 저술에 몰두하였으되 북방의 임금을 그리워하는 노래는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18년을 살았다.

강진 주막거리 뒷방에서 살던 그는 다산 마을로 이사했고, 그곳 초당에서 11년을 살았다. 나는 다산 초당에 여러 번 다녀왔는데, 다산의 품은 아늑하고 초당에 오르는 길은 가뿐했으며 바람 소리는 싱그럽고 서늘했다.


다산이 해배되어 고향 마재로 돌아갈 때, 다산에서 낳고 기르던 어린 딸이 있었다고 한다. 정사에 전하지 않고 문헌에 기록되지 않았으며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설처럼 흐르고 있다. 홍 씨 부인은 제 소생이 아닌 어린애를 내쳤다고도 하고 이후 아이는 어딘가에 맡겨졌다고도 한다.

그 이야기 어딘가에 나의 가슴을 짓누르는 단추가 있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부재로 자란 내 영혼이 아파하는 소리는 아닌가 싶어 가슴이 시렸다.


나는 그 다섯 살 난 어여쁜 아이가 살아남았기를 기도했다. 제 어미를 떠나 아버지의 고향 마재로 천 리 길을 걸어왔을 아이, 그러나 인정받지 못한 어린 생명이 기필코 살아남았기를 소망한다. 버려지고 천덕꾸러기가 되었더라도 기어이 살아남아서 현생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훗날 그 후손의 후손이 동백과 백일홍이 흐드러진 다산 초당에 들어서기를 원한다. 초당에 오르는 숲길의 푸름에 한 숨 돌릴 때, 툇마루에 앉아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때, 원시의 기억이 소환되듯 그렇게 끌림의 이유가 깨어나길 바란다.

섬광처럼 번뜩 잊혀진 설화를 기억하고 죽비를 맞아 정신이 들 듯이 유전자에 새겨진 피의 진한 이끌림을 깨닫기를 원한다.


유배에서 풀린 정약용을 따라나선, 어린 딸의 이야기와 그 딸을 딸려 보낸 어머니의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글로 쓰고 싶었다. 다산에서 얻은 어린 딸의 존재가 사실이건 아니건을 떠나서, 나는 허구의 형식을 빌어서라도 삶과 결별하지 못한 생명의 굴곡진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나와 다산 사이에는 인과 연의 결속이 없다. 하여 나는 다산에게 빚진 게 없지만, 왠지 이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이 숙명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서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지만, 만약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면 이러하리라.

마재로 떠나기 위해 어린 딸의 머리를 곱게 빗기고, 여러 달을 준비한 고운 옷을 입히는 여인의 눈물에서 아픔의 기록은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정약용의 생애와 눈부신 저술 앞에 서면, 나는 역사에 당당할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그를 만나고 싶다. 그를 만나서 목숨이 오가던 흉흉했던 시절의 무서운 이야기 말고, 배교와 배신으로 살아남은 생에 대해 침묵하던 그 고통의 시간 말고, 오직 초당에서 기르던 어린 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자손이 오늘을 살며 커피를 마시고 잡담을 나누는 평범한 사람으로 지내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그 가능성을 믿는 마음이,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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