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이 여덟 개인 사람처럼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 성향은 태생적인 것이다. 어딘가로 떠나지 않으면 눈이 시리고 가슴이 답답했다. 제 꼬리를 물고 자리를 맴도는 도마뱀처럼, 전진하지 못하는 날들은 견딜 수 없었다. 명리에서는 이를 '역마살(驛馬煞)'이라 부른다.
역마살에 방랑의 바람이 불면 나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그것은 주기적인 것이면서도 고정되지 않은 이동의 습성 같은 것이다. 나의 여권은 전 세계를 방랑한 흔적이 훈장처럼 빼곡하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멀리 다녔다. 1년에 두 번 정도 유럽에 머물렀다. 그곳에 가면 고향의 안온함과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타인이 된 듯한 느낌이 좋았다. 나는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티브이 없는 집에서 함께 책을 읽었고, 학원비로 충당 가능한 만큼 세계를 여행했다.
아이가 만 12세까지는 무료로 기차를 마음껏 탈 수 있었다. 기차는 가고 싶은 그 어떤 도시로든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독일의 시골 마을이건 프랑스의 간이역이건 기차가 연결되는 곳에 우리는 도착해 있었다.
한국어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온전히 서로의 보호자가 된다. 그때 우리는 안전과 안심을 책임지는 운명공동체로 강하게 결속된다고 느꼈다. 그 어떤 고단과 힘듦도 여행이라는 말로 갈무리하면, 여전히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나는 아이에게 늘 말했다.
“너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여행의 기억과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혼자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란다.” 나는 아이가 여행을 통해 이미 몸으로 그 말을 이해했다고 믿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꿈속의 나는 몇 달이건 반복해서 낯선 역에 서 있곤 했다. 도무지 어디인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어슴푸레 이곳이 나의 집임을 알았고 안도했다. 두렵고도 가슴 설레는 밤이었다.
매일 밤, 잠든 내 영혼은 가 본 적 없는 낯선 곳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매번 새로운 창가에 앉아, 본 적 없는 세상의 풍경을 향해 달렸다.
어느 순간 꿈은 멈추고, 짙게 선팅 된 안경을 벗으면, 다음 여행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젊은 미당은 <화사집>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그의 시를 읽으면서 바람처럼 마음 둘 곳 없던 젊은 날을 떠올린다. 시대를 아파한 스물세 살의 평범한 젊은이가 그려진다. 그리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아프고 부끄럽던 나의 젊음이 언듯 비치면, 나는 어딘가로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내가 내딛는 걸음이 울림이 되어, 아이의 삶에 고스란히 스며들기를 원한다. 아이의 가슴에 남을 기억이, 삶의 잔소리가 아니라 거친 세상을 성찰하는 풍경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다음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