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노래의 흔적

by 이채이

나는 시골 교회의 성가대에서 노래했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성가를 연습하고 본 예배의 성가를 담당했다. 폐허의 마음에 신앙의 터를 다지고 믿음을 쌓아 올리는 경험은, 내게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가왔고 축복으로 여겨졌다. 내가 그때 신을 만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연습하고 불렀던 아름다운 곡들은 불안하던 나를 굳건하게 붙들어 주었음은 확실했다.


중증 뇌성마비를 안고 태어난 송명희가 쓴 시에, 최덕신 목사님이 작곡한 곡들을 특히 좋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노래를 기억하고 부를 수 있다.

최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말보다 힘이 센 것이 시요, 시보다 힘이 센 것이 노래”라고 했다. 그 말씀이 내 삶 속으로 걸어 내려왔던 순간을 느낀다. 오래전 읽은 글은 잊혀도 노래는,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부지불식간에 기억의 강을 헤엄쳐 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은 가치와 믿음의 영역이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조차 금기시되었다. 성서의 역사를 궁금해하고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죄악시된다.


당시 나의 노래는 간절했고 눈물은 그 증거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성스러움 가운데 평온하다고 느꼈다. 또한 나는 진리 안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동시에 인간 예수가 한 명의 신으로 추앙받는 과정이 다른 종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나는 믿음을 검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기록과 역사를 뒤져가며 진리를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신앙이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확장되면서, 믿음이라는 톱니를 물고 정교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알게 되었다. 신의 이름 뒤에 숨은 살육의 역사와 인간을 핍박하던 시대의 비신성, 부도덕이 난무하는 종교 지도자의 행태 또한 알게 되었다. 나는 성 삼위일체가 공인되는 과정의 역사를 읽으며 더 이상 노래할 수 없었다.


나는 믿음 가운데 용감하고 무모했던 스피노자를 기억한다. 그는 종교적 핍박을 피해 불모의 땅 네덜란드로 이사한 유대인 부모 아래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영특했고 유대교 지도자가 되리라는 기대에 순응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는 현생의 고통을 죽음 이후의 천국으로 보장받는다는 믿음에, 심정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성을 가진 인간이 최종적으로 내릴 수 있는 판단이 아니었다. 유대의 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결국 집단에서 철저하게 내쳐지고 추방당했다.


나는 스피노자가 유대 사회에서 파문당한 일이 서양 철학사의 거대한 사건이라고 본다. 스피노자는 유대교의 리더로 성장해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는 신을 버렸고, 철저하게 미움받고 배척당한 삶을 선택했다.


스피노자를 파문하는 선언문이 만들어지고, 그 선언문은 인간이 한 생에 얻을 수 있는 온갖 저주와 멸시의 말로 가득했다.


'파문하고 추방하고 저주하고 비난한다. 징벌하고 또한 징벌로 저주하고 낮이나 밤이나 누울 때나 일어서는 매 순간 저주받을 것이라 기록한다. 누구와도 교제할 수 없고 누구도 그와 같은 지붕 아래 있을 수 없다.. ‘


이천 년 전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래, 한 인간에게 쏟아부은 가장 잔인한 저주가 아니었을까... 유대 공동체에 순응하지 않는 스피노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감정의 폭풍에 휩싸인 인간 정서의 밑바닥을 연상케 한다.


스피노자는 이 모든 저주와 징벌을 받아들이고 떠났다. 안온한 삶을 버리고 부모의 유산도 거부하고 홀로 안경렌즈를 깎으며.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철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에티카>는 인간이 겪는 온갖 감정에 대해 말하며, 상처받은 이들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을 떠난 인간 스피노자는 자연 그 자체에서 신을 찾았다. 그는 말했다.

"진리는 그 자체로 빛난다. 오류는 진리의 부재일 뿐이다"


스피노자의 선택은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성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는 송명희의 시를 읽으며, 오래된 믿음과 노래를 떠올렸다. 어릴 적 소중히 여기던 보물상자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플라스틱 구슬처럼, 시간을 잃어버린 채 흔적만 남은 도도새처럼, 내 마음속 노래도 그렇게 화석처럼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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