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과 외갓집

by 이채이

외갓집. 외갓집이라는 말을 들으면 굳이 외라는 글로 테두리 쳐서 구분시킨, 엄마의 가족과 '외'가 붙은 할머니가 떠오른다. 엄마의 엄마 남매들은 외형상의 '외'를 두르고 있지 않지만, 아빠의 아빠와 남매들을 구별하기 위한 간편한 도구로 사용된 사회적 약속의 접두사였다. 내게 '외'는 접두사를 뛰어넘는 확실히 외따른 기억을 남겼다.


일 년에 두어 번은 외갓집에 갔던 기억이 있다. 맏딸이던 엄마는 그 아래로 일곱이나 되는 동생들을 부모님을 대신해 보살피고 먹였다.

엄마의 손을 잡고 외갓집에 갈 수 있는 것은 막내의 특권이었다. 하얀 박꽃이 피는 마을이었다. 전봇대에 가까운 빈 땅에는 제 맘대로 넝쿨어가는 박들이 줄기를 내어 두렁을 덮었다. 주먹만 한 작은 박부터 머리통만 한 박까지 조롱조롱 달려있었다. 그중 으뜸은 달빛 속에 피어 있는 새하얀 박꽃이었다.


박꽃을 처음 본 나는 손가락으로 박을 가리키며 무엇인지 물었는데, 대답 대신 돌아온 말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열매가 썩는다는 것이었다. 손가락 끝 묻은 흙먼지가 작고 예쁜 그 무엇과 불화하여 썩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소곳하고 어여쁜 것이 박꽃임을 알게 되어서 기뻤다.

향기는 희미하고 옅었지만 저녁나절 외가 마을에서 풍겨오는 삶의 냄새와는 섞이지 않아서, 저 홀로 은하의 밤을 건너는 듯한 신비로운 기운이 있었다.


나에게는 다섯이나 되는 이모가 있었다. 귀밑 단발머리에 뽀얗고 깨끗한 피부, 검정 세라복과 잘 어울리던 이모는 공부를 잘했고 미모가 남달랐다. 그런 그녀가 신에게 받은 것은 '간질'이었고, 당시에는 '지랄병'이라고 불렀다.


예측 불가능한 발작과 뒤틀린 몸짓을 눈앞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공포와 욕설로 금기시했다. 그것은 병이었고 수치였다. 자태가 고왔던 이모는 신의 저주를 극복하지 못한 채, 농약을 마시고 헛간에서 생을 마감했다. 나이 열아홉이었다.


헛간 옆을 지날 때 나는 역한 농약의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벌레와 잡풀을 없애는 독한 것이 이모의 삶에 개입되었다는 것이 무서웠다. 꽃피는 계절의 노래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 죽음보다 더 절박한 삶 앞에서 생명을 헛되이 마감했다. 박꽃이 피던 계절이었다.


나는 외갓집에 가면 헛간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헛간에는 우중충하고 느린 시간이 흐르고, 바닥에 오래 눌린 냄새가 물러나지 않고 고여있는 듯하다. 그것은 농약의 역한 냄새이기도 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뱉어낸 기묘한 향이기도 하며, 내가 애정하는 박꽃의 향기이기도 하다.


달밤에 피어 있는 박꽃을 보면 숨 막히도록 아름답다. 이유는 들꽃만도 못하게 제 삶을 마감한 젊은 여인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오래 침묵하며 아픔을 감내한 외갓집의 고요함을 닮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도 먼저 간 사람에 대한 일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세월의 강을 따라 남은 자들은 둘러앉아 웃고 서로를 다독이며 삶의 질서에 순응한다. 오래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누구도 더는 박을 심지 않는다.

달과 잘 어울리던 하얀 꽃, 그리고 이모를 회상할 수 있는 흐릿한 향의 박꽃은 더 이상 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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