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芝蘭之交)는 아주 고결하고 향기 나는 우정을 대신하는 말이다. 유안진 작가님의 글 덕분에 지란지교가 널리 알려졌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금란지교(金蘭之交)가 보여주는 굳건한 정서를 더 살갑게 여긴다.
금란지교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 묵직한 우정을 말한다. 사람의 사귐은 애초부터 그 강인함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먼저 사귐이 있고 그것이 쇠처럼 강하게 굳어지고 난초처럼 향기로워지는 것이다. 영지와 난초의 교유 같은 신령스럽고 고결한 이름은 아니지만, 미네르바가 쓴 황금빛 투구처럼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난의 향을 품는다면, 나는 그것을 제일의 교제로 여기고 싶다.
몇몇 벗은 내게 영원히 향기로운 인연으로 간직된다. 아쉽게도 여고 시절의 벗은 기억에서 다소 흐릿해졌다. 이는 마음에서 울타리 치고 가름하는 행위라 세월의 권속도 간섭할 수 없다. 대학 시절은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투성이다. 헤아릴 수 없이 무산된 계획의 날들과 무겁게 침잠하는 순간들이 젊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 틈에도 나를 숨 쉬게 하고 30년 세월을 굳건하게 지키는 인연이 있다.
낭만 정취의 극점에 서 있던 시절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모여 시험 준비를 할 때도, 점심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홀짝일 때도, 함께 국화꽃을 꺾어서 책 사이에 끼우던 벗이 있어서 좋았다. 소국은 일주일을 말리면 향기 나는 압화가 된다. 지나치게 오래 말리면 향기는 증발되고 노랑은 희미하고 투명해져 버린다. 누구에게나 시집을 겨드랑이에 끼고 살던 시절이 있다. 세상은 온통 시인들의 것이고, 시를 읽는 젊은이들의 것이다. 이것은 계절에 구걸하지 않고 얻어낸, 우리 청춘들의 특권이자 승전보 같은 것이었다.
국화 송이가 벌어지기 전, 팽팽하고 여린 물빛 봉오리를 만져본 적이 있을까? 촉촉한 꽃물이 손끝을 타고 온몸에 물든다. 혈장을 타고 흐르는 색은 마침내 피어날 그 빛을 예고한다. 이 위태롭고 떨리는 순간은 시의 언어로 녹아내린다. 그리고 심장에 고였다가 모세혈관의 끝단까지 흐른다.
충만함이 가슴에 채워지고 개화의 날을 기다릴 때, 우리는 따사로운 꽃밭에 앉아서 볕을 쪼이며 자주 소곤거렸다. 그 내밀한 귓속말 중에는 은밀하게 진행 중인 우리의 대담한 계획이 숨어 있었다. 우리는 가을이면 국화 도둑이 되어 여기저기서 몰래 꽃송이를 잘라 왔다. 가을의 여신이 강림하며 옷자락을 스친 자리마다 슈가파우더 같은 서리가 내리고, 그 자국을 따라 국화는 매섭게 피어났다. 꽃은 머금었고 부풀었고 마침내 벌어졌다. 꽃 도둑들의 젊음은 무책임하고 때론 무분별했다. 함께한 날들이 여신의 옷자락을 타고 잊힐만하면 찾아와 기억을 깨운다.
가루 주머니를 단 벌들이 성실하게 모여들고, 주머니 가득 꽃가루를 채운 벌들은 이른 겨울을 준비한다. 때는 상강(霜降)을 지나고 서리의 계절을 맞고 있었다. 하얀 김이 피어나는 잔에 국화꽃을 띄워서, 커피와 쌉싸래한 소국의 향을 섞어 마시는 것이다. 우리의 놀이는 이런 것이었다. 납작하게 잘 말려둔 꽃잎으로는 편지를 보내기에 좋았다. 편지지의 한켠에 자리한 누름 꽃은 새초롬하게 떨구어지는 모양새라, 무슨 글을 써도 그 아취가 가시질 않았다. 우리가 수없이 주고받았던 시처럼 순수했던 마음들, 그렇게 쌓여간 사연만큼 우리의 시간이 숙성되었음을 안다.
국화의 잎은 쓰다. 잎을 씹어 먹어보면 쓴 물이 터지며 입안 가득 소국 향이 고인다. 침샘은 여지없이 자극되고 쑥 빛 침이 입안에 차오른다. 이때 씁쓸한 침을 뱉는 것은 미안한 일이다. 지혜를 가진 벗이라면 잎을 입에 머금은 채 달콤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될 일이다. 하여 나의 가을은 함께 마신 쓴 국화잎 커피로 기억된다. 쇠처럼 단단해진 금란지교를 나누던 우리의 우정은 부식되지 않았다. 아직도 오싹할 만큼 쓴맛과 달콤한 향으로 남아있다. 우정은 생명의 힘을 가지고 쑥쑥 자란다. 우리의 시간은 소멸하지 않고 지금도 곁가지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