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매미

by 이채이

가을이 깊어지려는지 새벽엔 귀엣가로 빗소리가 차분하게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베란다의 방충망에 죽은 매미가 매달려 있었다. 오그라진 발끝을 망에 끼운 채 짧은 계절을 마감했다. 작은 곤충이 이 땅에 와서 얻은 수확이라면, 한 철 원 없이 놀다 가는 것일 텐데, 이 매미는 너무 늦게 당도한 탓에 소망을 펴지 못한 듯하다.


매미는 온몸을 꿈틀거려 겨우 땅 위에 오른 순간의 모든 환희를 잊었다. 이미 떠나버린 불볕의 날들을 뒤늦게 알았을 것이다. 철 늦게 나타난 매미의 입은 이미 비틀려서, 청명한 피리를 불어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제 몸을 보호하던 갑옷을 벗고 우화이 등선을 꿈꾸던 날개는 활력을 잃고 뻣뻣하게 굳었다.


그물망에서 매미를 조심스레 떼어내서 손바닥 위로 뒤집어 올렸다. 매미의 몸통은 머리부터 푸르다. 땅속에서 오래 소망하던 지상의 빛이 초록이었음을 온몸으로 발색했다. 주름진 배의 울림통은 더는 소리를 품지 않은 채, 여름의 끝자락과 오는 계절의 초입에서 맞부닥치며 공중분해 되었다. 대개 이들의 죽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체된다. 사람의 생명이 암흑의 땅속에서 분해되듯.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진 상사화는 이제 소망도 잊은 채 시들어 간다. 세상을 공명하던 많은 것들은 자신의 때를 가늠하며 뒷걸음으로 물러난다. 이치를 수긍하고 법도에 맞는 행동으로 자연의 순환을 굴려서 간다. 이 시듦과 죽음과 삶으로 이어지는 조화로움은 가버린 것에 대한 긴 애도의 시간을 허락지 않는다.


싱그럽게 자라는 무, 배추가 입을 벌리고 빗방울을 먹는 순간을 지켜본다. 고루 퍼 담던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부채질하던 순간도, 온몸이 얼얼하도록 퍼부어 대는 빗물을 맞고 서 있는 지금도 모두 제 몸이 영글어가는 과정임을 안다. 보랏빛 가지 뒷잎에 바싹 붙어있던 흰나비가 물에 젖은 날개를 말리느라 새침해졌다. 대숲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고양이 새끼들이 놀고 싶어 아옹 아옹 소리를 낸다. 단속하는 어미가 떨어지는 빗방울 아래 분주하다. 잎사귀 아래 나비와 대숲의 나비들이 한낮의 비를 피하고 있다.


여름 내내 무던히도 피워내던 수국의 잎은 까맣게 타들어 가, 가지마다 엉성하게 붙들려 있다. 가는 것과 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계절이 섞이지 않고 순서대로 오는 것은 복되다. 지상을 물들이는 이름다운 풍경들이 차례를 지켜 오고 간다. 이 질서 정연한 맞교대 행렬이 하잘것없는 하루에도 무게를 얹어준다.


땅을 식히는 빗줄기가 엇박자로 타닥거린다. 그리움은 시간을 더디게 하고, 늘어진 순간은 끝내 탄성을 잃는다. 연락이 뜸했던 친구와의 만남은 서먹하다. 하지만 한 해에 한 번 찾아오는 가을은 허물없이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가늘게 오므라든 발의 매미를 흙에 묻으며, 누군가 이 땅에서 이루고 싶었던 소망이 푸릇하게 물들었기를. 그리고 다음번엔 조금 더 일찍 서둘러 인간의 땅에 이르기를 살며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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