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환청

by 이채이

삶을 칭하는 말을 고르다 보면, 빼놓을 수 없는 어휘가 있다. ‘살다’와 ‘사람’ 그리고 ‘사랑’.


‘살다’라는 동사가 없으면, 사람이라는 존재도 사라진다. 사람은 ‘사는 이’로서 살다의 흔적을 품고 있어서 매 순간 몸과 마음에 자국을 남긴다. 이들은 실체와 그림자처럼 서로 공존하다 인간의 의식 바깥으로 밀려날 때 비로소 사라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사랑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은 사람의 살과 피에 녹아있는 말이라, 존재가 없으면 가벼운 안개처럼 증발해 버린다. 오랜 세월 시인들은 사람과 사랑의 흐름을 탐구했고, 그 연구 결과는 시로 남았다. 시인들은 그 속에서 비논리적이지만 진실한 법칙을 찾아냈다. 인간 진화의 필연을 사랑에서 읽기도 하고, 삶의 당위를 사랑에서 배우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단절되는 사랑과, 그 뒤를 따라오는 삶의 순환 고리를 들여다본다. 인적 드문 숲길에 떨어진 도토리 하나가, 다시 땅에서 썩어 숲이 되는 일처럼, 사랑과 삶은 끊임없이 조화롭게 이어진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사랑에 대한 기본예절이다. 그 헤아림은 현재 진행형일 때 비로소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인간은 이성에 대해서만큼은 이성적이지 않아서 심장의 말에 이끌리고 휩쓸려 다닌다. 마음에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나면, 사랑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내 안에 일어나는 연모의 회오리는 토네이도를 닮았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뜨겁게 달궈진 심장이 뱉어내는 열기가 상승하며, 마음과 불협하고 부딪히다가 일어난다. 강력한 소용돌이는 혼란을 더하지만, 심장은 서서히 고요를 되찾는다. 내 마음에 사랑이 처음 생겨날 때 작았던 회전 바퀴는 점차 거대한 흐름으로 성장한다. 사랑에 빠질 때는 상대의 모든 것을 거침없이 빨아들여 몸집을 키우는 습성이 있다. 그 정체 모를 거대한 힘 안에서 사람은 정신을 잃기 쉽다.


회오리바람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난데없는 길이 생기고, 나무가 뿌리째 뽑히기도 한다. 단단해 보이던 이성의 힘은 사랑이라는 강풍 앞에서 허술하다. 사랑은 사람과 분리될 수 없기에 그 본질 위에 사랑을 얹어도 된다.


사랑은 여래의 미소 같은 얼굴을 하고 찾아오지만, 그 은은한 표정에는 결말을 비극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은 잔인할 정도로 가혹할 때가 많다. 살을 태우고, 심장을 달구며, 그 화끈거리는 불길 속에서 사람은 겨우 살아 있다. 기쁨과 떨림의 시간은 유한하고 뜨겁던 사랑은 흩어지는 연기처럼 바람에 씻긴다. 글의 매정함을 탓하지 말라. 오히려 사랑을 대하는 인간의 냉정함을 돌아보고 흉볼 일이다.


살아있기에 우리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고대한다.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밤마다 등불을 지키는 자의 심정으로 기다린다. 살아있음이 사람이라는 주체로 남아 있듯, 심장에는 사랑의 환청이 고여, 그 사랑과 함께 오래도록 잔잔히 머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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