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복판이었다. 피다가 지친 연꽃은 제 색을 잃은 채 꺾였고, 부지런히 연밥을 영글이고 있었다. 팔을 들어 간신히 빠져나오려던 연잎은 쏟아지는 빗물을 받아내고 있었다. 쌀쌀해진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서로가 서로의 상처 난 잎을 어르고 있었다. 남양주가 시댁이라 좋은 점은, 종종 두물머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 일 게다.
두물머리에 가면 물안개가 먼저 나를 감싼다. 빗속에서 안개는 힘을 잃고 잠잠하다. 마음을 건드리던 심란한 일들이 민낯을 감추고, 빗물처럼 강위로 낙하한다. 하늘의 것이 낙하하는 지점마다 방울방울 말을 남긴다. 말이 스르륵 사라진 자리에서부터 그리움은 퍼져나갔다. 우산을 받쳐 들고 쪼그려 앉으면, 내 발은 북한강의 일부인 듯 스르르 풀린다. 물을 찾아 뻗는 뿌리처럼, 본능은 여전히 생을 향한다.
남한강이 곡선을 그리며 굽이쳐 와서 그 흐름을 고르게 하고, 수직으로 곧장 남진해서 달려오는 북한강이 이곳에서 만난다. 두 물은 서로의 물길을 거스르지 않고 그저 섞이면서 온화해진다. 두 물의 흐름을 조망하며 움푹 패인 물가에는 인공 습지와 물길이 조성되어, 자연을 인간의 삶으로 바싹 끌어들였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여러 야생 조류가 지절거린다. 물닭과 논병아리는 수변공원에 터를 닦고 어린 새끼를 키워낸다. 어치나 딱새 직박구리가 수풀에서 팔짝거리고 놀면, 부들과 갈대 사이로 쪼르륵 줄을 세워 새끼를 이끌고 다니는 오리들이 쉬쉬거리며 소곤댄다. 이 살아있는 것들의 조화로움에 마음이 흔들린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다 지친 다리를 쉬려고 강가에 앉았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날이나 빗소리가 세상에 가득한 날은, 걷지 않아도 보고픔이 마음에 가득 찬다. 내가 찾아오는 계절엔 어느덧 여름의 꽃들은 사라지고 영 볼 수 없다. 먼저 떠나보낸 이의 젊은 날처럼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시간은 고이지 않고 흘러가는 것임을 두물머리에 서면 깨닫는다.
내 안에서 열을 무시하고 침범하는 그리움은 감당할 수 없게 번져온다. 세상은 나의 개입 없이도 순조롭게 돌아간다. 있고 없음은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쉬는 것과 같다. 이는 유무의 무한 반복이라는 우주 질서의 궤 속에 있다. 당신이 없는데도 살아진 시간이 놀랍다. 애달파할 겨를도 없이 흘러가버린 것이 시간뿐이 아님을 이곳에서는 그냥 알게 된다.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지(知)처럼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어서 자연스레 내게 당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빛이 내리고 비를 거두어가면, 풀벌레들이 빗방울을 털고 나온다. 제 울음주머니에서 꺼낸 노랫가락은 삶을 이어가게 하고 잠시 침묵하는 것들을 깨운다. 여치는 젖은 날개를 분주히 말린다. 목이 마른 귀뚜라미는 잎새에 맺힌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나의 갈증도 그들과 같다. 물을 찾아 걷는 동안, 내 안의 뿌리는 남겨진 여운으로 자란다. 내 걸음의 끝에 당신이 없음을 이미 알면서도, 나는 그 길을 멈추지 못한다. 결말을 아는 드라마를 보듯, 숨겨진 마음 한구석이 난감하게 저려온다.
두물머리의 밤은 고요했고, 그리움은 끊이지 않는 강물처럼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