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곁에 두려는 마음은, 사랑보다 욕심에 가까울지 모른다. 철창 안에 가두어두고 깃털의 오묘함과 지저귐을 듣는 것은 쉽다. 무더위가 극심한 여름 아침을 잉꼬 두 마리가 재잘거렸다. 새의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남편은 새들을 창밖으로 쫓아냈다.
한참 만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황급히 새들을 데리고 왔으나, 횟대에서 중심을 잃은 새들은 바닥에 떨어졌다. 발가락을 오그린 채 굳어버린 새는 눈을 뜨고 죽어있었다. 암컷의 배는 부풀어서 그 안에 알을 배고 있었으나, 후텁지근한 더위와 인간의 무심(無心) 사이에서 그 생은 멈추었다. 남편의 신경을 거스른 죄로, 새는 떠나갔다.
산속 나뭇가지에 발을 붙이고 호탕하게 울어본 적 없는 새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비행의 꿈이 아니었을까. 잉꼬가 죽고 시무룩해진 우리 곁에 온 가족들이 있었다. 에어컨 실외기를 바람막이 삼고, 바람이 돌아 나오는 구석에 둥지를 튼 황조롱이였다.
새끼들은 알에서 깨어나 소란하게 우리의 아침을 깨웠다. 어린 조롱이들이 우리를 보며 쉰 목소리를 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눈이 마주쳤다. 어미 새가 사람의 시선을 눈치챌까 두려워, 새들이 말을 배우기 전에 바삐 웹카메라를 설치했다. 우리는 그들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황조롱이 부모의 자식 사랑은 극진한 것이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먹이를 물어 나르고 멀리 전선에 앉아 보초를 섰다. 어느 정도 자란 새끼들은 달리기를 배운다. 다다다다 뛰어가 브레이크를 잡는 연습을 한다. 솜털이 깃털로 자랄 만큼 시간이 흐르고 둥지를 떠날 때가 되면, 어미새는 기어코 날아오르게 하려는 열망으로 날기 교육에 힘쓴다. 세 마리의 아기새는 오로지 저 혼자의 힘으로 달리고 추동력을 얻어 무의 허공을 향해 날아올라야 한다. 무모한 녀석, 용감한 녀석, 소심한 녀석까지 새들도 성격이 제각각이다.
처녀비행 날이 되면, 무모한 녀석이 먼저 달려 나간다. 허공에 발을 헛디디는 순간 날갯죽지의 힘으로 퍼덕거리며 날아오르려 한다. 무모는 지상으로 추락하며 소리를 질러댄다. 멀리서 파닥거리는 새끼를 지켜보던 어미새는 활강하듯 내려가 유려한 솜씨로 새끼를 낚아채 온다. 한 놈을 둥지에 올려놓으면 한동안 제 얘기를 지껄이느라 소란하다.
이번에는 용감이가 나간다. 도움닫기를 하며 허공을 향해 내던진다. 날아본 적 없는 날개는 비행 근육을 작동시켜서 공기 중에서 난다. 몇 초간 비행을 마친 용감이를 어미새가 채서 주워온다. 소심이 차례가 되면 난생처음 번지점프를 하는 점퍼의 망설임이 느껴진다. 어미새는 소심이에게 조곤조곤 말을 건네고 부리를 쓰다듬은 다음 과감하게 발로 밀어버린다. 겁 많은 낙하자가 낙하산을 먼저 활짝 펴듯, 소심이는 날개를 쫘악 펴고 깃털 사이로 파고드는 공기를 밀어낸다.
이렇게 첫 비상이 끝나면 수삼 일 내로 황조롱이 일가는 둥지를 떠난다. 나는 텅 빈 둥지를 보며 서운함에 그들의 그림자를 더듬었다. 그때, 아주 오래 전의 한 사람을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웠다. 운재 오빠.
그는 농부의 막내아들이었다. 형과 누나들이 도시로 떠난 뒤 홀로 남아 농사일을 거들었다. 어린 그에게 일은 고되고 힘든 것이었을 것이다. 농사지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처럼 도시로 나가고픈 열망의 아들. 서로가 완강한 만큼 두 사람은 대립했다. 떠남을 결박하려는 사람과, 고난을 짊어지고라도 다급히 떠나고픈 열병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먼 산밭에서 복숭아를 가득 담은 지게를 지고, 구부정해진 몸을 조심조심 가누며 오는 사람은 운재 오빠였다. 제집까지 가려면 두어 번은 쉬어야 갈 수 있다. 집 앞 논둑에 지게를 잠시 부리고 거친 숨을 내쉬는 동안, 이마의 땀도 송골하게 흘러내렸다. 그 순간에 내달려서 운재 오빠에게 가면, 늘 웃으며 복숭아 두어 알을 내주었다. 참으로 어질고 순한 눈빛이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복숭아를 구름처럼 지고 가던 사람은 보이지 않아서 물어보니, 도회지의 제철소에 갔다고 했다. 더 많은 복숭아를 져 나르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공장을 짓기 위해 집을 떠났다. 공장 인근에는 쉴 새 없이 일이 밀려들고 어디건 쑤시면 일은 넘쳐났다. 운재 오빠는 제 꿈을 찾았을까…. 생각했다.
두어 해가 지나고 그 오빠의 부고를 들었다. 콘크리트 작업 보조로 일하다 기계에 치여 중심을 잃었다고 했다.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고 했다. 맥없이 떨어져 생명이 끊어졌다. 그에겐 최초의 추락에 펼 날개가 없었고, 황급히 자신을 낚아 잡아줄 어미 새가 없었다. 그 오빠는 제 몸을 태워서 날아갈 방법을 알지 못했기에, 질척거리는 콘크리트 바닥 철근을 뚫고 낙화했다.
어린 새가 살기 위해 날개를 펴듯이 그도 그저 살기 위해 두 팔을 퍼덕였을 것이다. 그 순간 그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고 견갑골의 강력한 힘으로 솟구칠 수 있었다면, 그의 삶은 신화가 되었을 텐데. 사람의 목숨이 한 번의 날갯짓도 못 해보고 끝날 수 있음에 오래 가슴 저렸다. 그의 나이 스물셋이었다.
그는 화장되어 숲에 뿌려졌다. 먼 산 중턱에서 그는 한 줌 가루가 되어 바람 따라 소멸했다. 바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와 함께였기에 나의 서운함은 덜했나 보다. 날지 못한 아픔은 부드럽게 다독여져, 가보지 못한 하늘의 나라로 흩어졌을까. 아마 바람이 그를 어루만지며 아주 멀리, 아주 높이 데려갔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