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하게 지는 사랑은 싫었다. 비참하게 쓰러지는 사랑은 죽어도 싫었다.
사랑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 날엔 지독한 두통이 찾아온다.
가까운 모퉁이에 선 당신이 나를 찬찬히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그런 날이면 등 돌려보내던 나는 소멸하고, 가뿐히 돌아서던 나는 감전된 채 남아있다.
수억 볼트를 한순간에 맞은 사람처럼, 나는 마비된 심장으로 살고 있음을 안다.
한순간 스친 전류가 몸을 관통해, 기억의 회로를 어지럽히고 간다. 당신의 잔상이 파도처럼 부서져서 흩어졌다면, 당신의 눈빛이 붉게 번지다 사라지는 노을이었더라면 좋았으리라.
무덤덤하게 당신을 잊고, 마비된 감각으로 이 계절을 지나간다. 공원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 나는 왜 어금니를 깨무는지 알지 못한다. 그건 이별의 조건반사다. 다리가 떨리고 눈이 차르르 떨리는 순간을 제어할 수 없듯이, 기억 어딘가에 남아서 그 길을 타고 오는 당신을, 이 계절의 나는 막지 못한다.
그런 날은 많이 아프다. 쓰다듬던 따스함이 수많은 날을 견디게 했다. 녹두를 한 줌 넣고 불린다. 마음이 허기진 날 어머니는 녹두죽을 끓여 주셨다. 관성처럼 녹두와 쌀을 뒤섞어 천천히 끓인다. 부드럽게 풀어진 녹두죽에 설탕 한 스푼을 넣는다. 달콤한 위로가 필요한 날이다.
밭에서 성급히 익은 초록의 콩. 녹두는 어린 풀벌레의 울음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한 숟갈을 입에 넣을 때마다 내 것 아닌 울음이 터진다. 풀벌레의 울음이 온기에 녹아 위장을 타고 내려서일 것이다. 울음이 눈물로 맺혀 한참을 흐르면, 마침내 풀벌레의 소리는 잦아든다.
볼품없는 노란 꽃이 열매를 맺어, 한 알 녹두가 되는 사태는 너무도 당연하다 여겼다. 비바람에 수북이 떨어져 버린 꽃 무더기를 본 적 없었기에, 그 아픔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당신의 저린 아픔을,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던 것처럼.
콩 한 알에서 우주의 조화를 알아차린다. 내 마음이 그랬다. 나의 마음은 모진 풍파를 견디고 매달린 채, 끝까지 단단하게 마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풀어 주는... 나는 한 알의 녹두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