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편지 (가을)
당신이 보고 싶어 산중에 박혔습니다. 바다에 가고 싶었지만, 그곳은 온통 당신의 영역입니다. 모래 한 알도 수평선의 일몰도 모두 당신의 품에 있습니다. 속 깊은 얘기를 들려주는 파도나 띄엄띄엄 울어대는 낙조조차도 모두 당신의 편이라, 눈물이 많은 나는 숲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립다는 이유로 더 가까이 갈 수 없었기에, 저는 바다를 볼 수 없는 곳에 와서 쓰러졌습니다.
당신은 바닷가 우체국으로 편지를 보내라고 말했지요. 세상에 바닷가 우체국이 어디 하나뿐이던가요. 당신이 지은 미소, 담담한 목소리, 소금기가 사그라든 그 모든 곳이 당신의 우체국이겠지요.
큰 상수리나무 곁에 작은 상수리가 자랍니다. 살포시 머리를 기댄 채 올겨울을 날 모양입니다. 난 그 상수리의 기댐이 부러웠습니다. 숲은 하루하루 헐벗으며 쇠약해지는데, 둘의 기댐이 도탑고 다정해 보여서 눈물이 날뻔했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잎이 없는 채로 아프게 겨울을 나도 좋겠다고 독백했습니다.
산자락마다 밤이 되면, 제 사랑을 덥히려고 굴뚝마다 난로를 피워댑니다. 완전 연소하지 못한 것들이 훈연의 향을 흩뿌립니다. 공기 속에 가을 냄새가 짙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생동하는 기쁨을 견디지 못한, 나무들의 웃음이려니 했습니다. 바람이 간질이고 지나간 사소한 흔적이려니 했습니다.
당신은 아셨는지요? 가을 냄새라는 것이 나무가 자신의 상처를 태워 보낼 때 나는 향이라는 것을요. 잎을 떨군 나무들은 무심히 제 아픔을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혼곤한 기억을 붙잡고 겨우 지탱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눈과 햇살의 서사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제 몸의 핏물을 꼭꼭 찍어내고 있었습니다. 진물이 말라서 아물고, 아문 자리마다 훈장처럼 딱지가 여물었습니다.
당신의 바다에 당신만 기억하는 우편배달부가 있다셨지요? 게으르게 소인을 찍는 심부름꾼 하며 늘 다정하게 믹스 커피를 건네는 바람도 있다 하셨지요. 당신이 앉아 있는 창에서 은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바스락거리는 숲길에 서서 당신을 기억할 뿐입니다.
나의 산속 우체국에는, 도토리를 모으느라 바쁜 다람쥐가 겨우 편지 한 통을 가져갔습니다. 산중 들국화의 향을 담아 보내려고 오래오래 향기를 채집했습니다. 헛된 짓이라고 바람이 훼방을 놓았지만, 난 꿋꿋하게 당신만 생각했습니다. 연보랏빛 구절초 우표를 붙여서 편지를 건넸습니다. 하늘이 파랬고 마음도 푸르스름하게 멍들었습니다. 다람쥐가 물고 간 편지가 어떻게 당신에게 닿을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원래 편지를 쓰는 사람은 유통의 절차를 무시하는 법이니까요.
청설모와 다람이에게 단단히 약속을 받아두었습니다. 먼 하늘을 날아오는 새들에게서 바다의 소식을 듣거든, 내게도 그 무성한 파도 소리를 꼭 들려달라고요. 날이 저물면 난로에 불을 피우고 등을 켜서 밤을 지핍니다. 사랑이 집을 찾아 들어오고 다정히 둘러앉아 속삭입니다. 그 말은 잔잔해서 들리지 않고 뭉개진 채로 겨우 엷은 웃음소리만 새어 나옵니다.
당신의 우체국에도 밤이면 가로등을 켜는지요? 당신이 나의 편지를 가로등 불빛에 비추어 읽기를 기도합니다. 애써 모은 소국의 향내가 바람에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창문을 꼭 닫고, 창가에서 읽기를 기도합니다.
향기가 사라지면 슬그머니 창을 열어주세요. 맨 처음 들어오는 바람의 용기를 빌어, 잠시 당신 품에 안기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