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말했다. 내게서 연한 수박 향이 난다고. 가끔은 잘 익은 멜론 향이 핀다고도 했다.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나에게 스며있다는 말이 포근했다. 가로수마다 잘 익은 수박살 같은 여름이 매달려 있고, 날개를 쉬는 참새와 까치들이 달달함을 쪼아댔다. 칼로 길을 내고 연푸른 멜론을 반으로 가른다. 칼의 단면은 서늘하도록 단호해서 반듯하게 잘린다. 흐르는 과즙과 섞인 향내가 나의 한때를 불러왔다.
은어가 지닌 그리움의 실체를 아느냐고 물었다. 보고픔을 가슴에 품어야 떠나는 것이고, 떠나야 비로소 그리워진다는 원리를, 시인처럼 사근하게 말했다. 고향의 흙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려 죽는 여우 얘기를 했던 것도 같다. 태어난 물에서 숨 쉬고 싶어 한다는 자연의 진리에 대해서도.... 나의 마음이 분분하게 흩어졌다. 당신에게 물들고 싶은 시간만큼, 마냥 머무르고 싶은 나에게, 당신은 선량한 눈으로 끄덕였다.
자갈밭에 숨겨둔 알들이 추위를 견뎌낸다. 모래틈에 묻어둔 것들이 겨우내 꿈을 꾼다. 물에서도 목이 마르다고 했다.
봄의 수온이 풀어지면, 알들의 기억이 녹아내려서 마침내 흘러 바다로 간다. 파도가 은어를 데리고 놀았다.
어느 날부터 은어의 기억은 자주 간질거렸고, 때론 종일 지느러미를 긁었다. 녹아내렸던 기억이 다시 선명해졌다.
당신이라는 절체절명의 사태 속에서, 나는 힘 없이 순종한다. 돌아오고픈 은어떼의 그리움을 따라간다. 아가미의 선홍빛을 기억하고, 힘찬 몸짓을 타고 나의 사랑도 거슬러 당신에게 닿는다.
당신이 나를 내려다본다. 내게서 옅은 멜론향이 난다는 말이 기쁘고도 아프다. 떠나고 돌아오기를 되풀이하는 은어에게서, 나의 향기를 느꼈다는 당신의 말이 시렸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오는 은어는, 오로지 그리움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쓰렸다. 나의 떠남이 다시 돌아오기 위함이라고 덤덤히 말하는 당신이 고마워서, 나는 눈물이 고여도 부끄럽지 않았다.
계절을 바꿀 수 없고, 우리의 이별은 확정되었다. 당신의 고백은 말이 서툰 나에게 기쁨을 채워주고, 떠날 수 있게 말없이 어른다. 당신의 절실함은 사랑이 덧없다는 운명마저 무너뜨렸다. 하여, 나의 사랑은 돌아올 곳을 잃지 않았다. 당신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실존의 이유가 되었다. 이제 고해를 건너 당신의 그리움에 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