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랑이 완전한 사랑이다. 한 번도 차가워 본 적 없는 인연이 아니라, 뜨겁게 사랑하고 치열하게 싸우다 싸늘해진 사랑. 용암처럼 끓어오르다 흘러넘치고, 미움과 질투까지 다 뽑혀 나가 버린 사랑. 숭숭 구멍이 뚫린 현무암처럼 까맣게 식어버린, 기쁨과 행복과 절망이란 이름을 알려 준 그런 사랑이 최고의 사랑이다.
기억의 창문마저 닫아버렸을지라도, 당신을 숨 쉬게 하고 살게 했던 순간이 있었다. 모질고 아프게 때리며 마음의 끝자락까지 따라온 숱한 감정들. 다 타버린 뒤에야 풀려나는 이별의 주술.
밥조차 삼키지 못하고 두근거림이 계속되는 날, 너를 만나면 별다른 처방 없이도 열이 내린다. 시름에 겨워 울적해도 한 번의 안아줌으로 스르르 빗장이 풀려난다.
화창한 날에 기이한 비구름이 몰려들 듯, 예견치 못한 일들로 인생의 향방이 틀어진다.
이별은 그 끝에서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 이별은 얼굴이 없고, 눈물만 있다. 몸속을 흐르던 슬픔의 분자들이 체액을 따라 밀려난다. 발버둥 치며 밀쳐낸 것, 그것이 눈물이다.
나의 눈물과 너의 눈물이 다르지 않아서 잠잠해진다. 눈물은, 누구에게나 짠 법이다. 뺨을 타고 흐르건 고인 채 말라 가건, 소금의 농도만큼 고스란히 너를 보전한다. 그리하여, 사랑의 잔향에는 짠 내가 난다.
사랑은 언젠가 떠난다. 이별 없는 사랑은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삶을 완결하듯 사랑의 끝은 헤어짐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리움의 역사가 일어 오고 그리움의 서사를 쓸 수 있다.
속세의 때가 묻은 사랑이야말로 천상의 사랑을 넘는다. 깨끗하고 순결한 것만을 귀히 여기는 순간, 세상의 미는 이미 난파되었다. 부서져 버린 것들 사이에 내미는 강인한 것들이 진짜 아름답다. 인류의 구원은 신께 맡기고, 당신은 나를 위해 다시 뜨거워지면 된다.
잃어버린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이 되고, 당신의 열망만큼 더 깊고 다정해진다. 얼음장 같은 이별에도, 미소 하나 남길 수 있다. 너와의 이별 없이는, 나의 사랑도 완결되지 않는다. 이별은, 결국 사랑이 남긴 또 하나의 이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