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밤은 동백처럼 붉었다. 검붉은 우박처럼 흩날린 동백이 산길에 수북이 떨어졌다. 사는 동안 한 점 먼지를 묻히지 않고 온전히 낙화했다. 동백의 잎들이 길을 채우고, 피처럼 선명해서 수그러졌다.
늦봄의 달이 고려의 청자처럼 파랬다. 멀리 바다를 등진 밭에는 유채의 알들이 여물어간다. 유채의 젊은 줄기마다 노란 향을 불러내어, 숨죽였던 그리움도 밤으로 걸어 나왔다. 유배의 날은 고단하였다. 달은 겹겹이 쌓여간다.
천리를 떠나왔다. 노곤한 육신은 밤을 뒤척이며 일렁였다. 밤은 깊어졌으나 잠은 멀었다. 사각사각 보리밭에서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의 가장 낮은 곳에서도 달은 밤을 밝히고, 집을 떠난 여자의 초야처럼 두렵기만 하다. 고향을 모르는 새들이 밤새 울었다. 밤은 그를 밀어내기만 하고, 겨우 쓰러져 잠들었다.
햇살이 다 식을 때까지 파도가 질척댔다. 부르튼 발은 말간 고름을 짜내고 있다. 살아있음과 죽음이 혼재된 진득한 냄새가 살을 파고든다. 어린 쑥을 천천히 우려냈다. 푸른 진액이 발바닥을 감싸며 고름을 빨아들였다. 숨을 고른다. 겨우 땅을 딛고 설 수 있다.
갯가의 여인들이 바다를 물고 오후 속으로 걸어간다. 남도의 육자배기는 때로 칠자배기로 늘려지고, 오자배기로 줄어, 생기 있게 갯벌로 스며들었다. 노랫소리가 띄엄띄엄 이어지고, 아픈 상처마다 꼬막이며 바지락이 슴슴하게 파고들었다. 짭짤한 내음이 허파를 그득 채우면, 여인들은 떨어지는 해를 밀고 뭍으로 온다. 바다가 물러가는 하늘의 때를 기다려 여인들은 다디단 바지락을 건져온다.
그 인심이 좋아 살 수 있겠구나. 멀건 조갯국이 노독을 어루만진다. 다산은 겨우 숨을 쉰다.
해풍은 방향을 바꾸며 강진의 밤을 쓸어간다. 바다는 검고, 그리움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그곳은 멀구나.
겉보리의 냄새가 바람에 섞여, 바다 너머 육친에게 닿기를 바란다. 흑산은 보이지 않고, 어둠 속으로 섬마저 숨는다.
숲의 춘란을 한 촉 캐서 뱃사람에게 보낸다. 심어둔 난이 울 안에서 터지면 그곳의 삶도 조금은 향그러워지려나. 그곳의 바다는 깊어서 시름이 빠져나오지 못한다. 바다는 차가웠고, 그리움은 무거웠다.
내가 머무르는 강진의 하룻밤이 하얗다. 먼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산을 넘어 들판을 쓰다듬는다. 이곳에서 다산을 기억하는 일은, 꿈을 꾸지 않는 일처럼 쉽다. 초당에 오를 때 발목을 낚아채며 걸음을 더디게 하던 나무뿌리를 기억한다. 멈춰 세워서 뒤돌아보게 한 순간을 음미한다. 이 거친 시간이 가라앉으면, 그리움의 파고에도 순한 잠을 자는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잠은 내게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