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은 내 아버지의 꽃이다. 누구에게나 추억의 꽃이 있다. 그 마법의 꽃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철 피어난다. 살짝 붉은 기운이 도는 연분홍의 꽃이 잎보다 서둘러 핀다. 가지 끝에서 꽃눈이 부풀어 펴지기까지 긴 호흡으로 지켜봐야 한다.
첫 꽃이 피면, 한 가지 꺾어 오시던 아버지. 그 기억이 혈관을 파고들어 심장에 흐르고 뇌에 박힌다. 첫 것의 향은 진하다. 콧속의 섬모들은 분분하게 흔들리고, 환영의 세포들은 복사꽃의 향기를 통과시켜 시(詩)의 입자를 만든다. 하여 내 시의 근원은 아버지의 꽃이다.
겨우내 텅 비었던 바구니를 들고 꿀벌은 부지런히 꽃가루를 털러 다닌다. 넘치는 바구니에도 아랑곳 않고 욕심껏 휘젓는다. 복숭아꽃에는 복숭아 향이 나지 않는다. 벌들이 분주히 다녀간 뒤에는 달고 매운 가루 냄새만 남는다. 일에 지친 꿀벌들은 복사꽃에 그대로 누워 깜빡 잠이 들기도 한다. 봄날엔, 홀로 황홀경에 빠진 꿀벌의 고단함을 본다.
배를 부풀려 씨앗을 품게 될 복사꽃이 예뻐서, 종일 꽃그늘에서 놀았다. 향기를 따라 벌들은 날아오고, 냉이꽃을 따고 자운영을 뜯으며 나는 종일 놀았다. 아비 없는 아이로 평생을 살았어도, 아버지가 안겨준 복숭아꽃가지, 산그늘을 가득 채운 자줏빛 진달래와 노란 생강나무. 그것들이 나를 키우는 흙을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진 유년이 외롭지 않았고, 몸 안에서 흡착된 시의 세포가 허파에 스며들어 숨 쉬는 순간마다 나를 살게 했다.
낡은 창고에 아버지의 기억이 살고 있다. 떠난 이는 세상에 그 흔적을 남기는데, 아버지는 꽃가지를 자르던 가위와 벌을 길들이는 훈연기를 남겼다. 연기는 벌의 언어를 지운다. 내게도 가끔은 아픈 기억을 지우고픈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면 쑥의 훈연으로 화를 누그러뜨리고 싶다. 나를 온순하게 하고, 성냄의 언어를 지워버리고 싶다.
복사꽃 날리는 봄의 노래를 듣거나 '아버지'라는 말을 들을 때, 잊고 있던 봄 한 자락이 내 안에서 다시 피어난다.
* 사진은 '들꽃' 님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