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모순

by 이채이

너는 나의 시다.

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그 신화의 부록쯤에서 나와 너는 기록되었다.

여자의 아픈 배를 가르고 네가 태어났고, 그 탯줄로 나는 슬픔을 꼬았다. 그래서 여자의 고통은 탯줄을 따라 흐르며, 우리 서사의 기원이 되었다. 시를 쓸 수 없는 날 아랫배가 아픈 것은, 여자의 통증이 아직 내 안에서 울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시무룩해지는 계절을 지나왔으니, 기쁘고 다행한 날들도 많았을 것이다. 계절의 색감을 모으느라, 가사를 놓친 노래를 흥얼거렸고, 틀린 가사는 늘 틀리는 누를 범했다. 노래는 혀의 기억을 따라가는 것인지, 고쳐 부르기가 힘들었다.


더러는 잊고 지낸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를 말다툼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결론이 모래성처럼 쌓였다가 허물어졌다. 파도가 바위를 쳐서 모래를 만든다는 시간의 마법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앙다문 조개의 몸에 난 상처가 눈물 같은 진주가 되고, 그 눈물을 나눠 먹은 사람은 바다를 걷는 인어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납득되지 않았다.


흙을 만져본 사람은 안다. 배가 고픈 날에도 내년의 씨앗을 보존하는 이유는, 한 톨의 씨앗을 통해서만 뿌리내리는 삶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먼지를 걷어내고 쭉정이는 골라내서 온전히 씨앗이 될 것만을 남겨둔다. 우리의 이야기는 너와 나를 통과하는 심연을 쓸고 간다. 나의 시와 너의 시가 될 온전한 조각을 추려 차곡차곡 담아둔다.


너의 목소리는 낭랑하여 듣기만 해도 시가 된다. 너의 앞에서 나는 자주 말을 더듬고 행동은 머뭇댄다. 사랑하는 일도 이별하는 일만큼 서툴렀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했던 기억보다 사랑했던 순간만은 너의 입술만큼 붉게 찍혀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너를 다 담을 수 없고, ‘사랑한다’는 말로는 나를 다 담을 수 없다.

존재할 수 없는 극단의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고, 기쁨과 아픔을 동시에 가진 너를 나는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런 너 앞에서 나는 종종 형용모순에 빠지고 만다.


세상에 와서 내가 사랑한 것들을 추스르려고 한다. 사랑한 것의 옆에는 눈물이나 그리움 같은 것이 딸려 나온다. 어린 동생의 얼굴을 씻기고 머리칼을 다듬어 놀이터에 내보내던 누이의 마음으로, 나를 반추했다. 사랑했으므로 진정 행복했다는 시인의 말을 이해하는지 나는 자주 묻는다.


나의 독백은 오래된 고백처럼 힘이 없다.

나의 글은 너를 맹인으로 살게 하고,

나의 방백은 너를 귀머거리로 만든다.

시를 쓴다는 건,

한 통의 잉크를 다 풀어

종일토록 아픔을 물들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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