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백 엄마의 최후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우리 반 아이들 중 한 명이 전과목 100점을 받았다.
소문은 금세 퍼졌고, 그 아이의 엄마는 단숨에 학부모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소위 ‘올백 엄마’로 불리며 동네 스타가 된 것이다.
며칠 뒤, 동네 카페에 학부모 몇 명이 모였다. 자연스럽게 아이들 시험 이야기가 오갔다.
“이번 시험, 우리 애가 수학에서 하나 틀려서 아쉬웠어요.”
민수(가명) 엄마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런데 누구네는 전과목 올백이라며?”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창가 쪽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한 엄마에게 쏠렸다.
“맞아요, 우리 애가 이번에 다 맞았어요.”
그 엄마는 겸손한 듯 고개를 숙였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와, 대박이에요!”
“진짜 어떻게 시켜요? 학원? 문제집? 비법 좀요!”
“역시 엄마가 잘하니까 아이도 잘하나 봐요.”
칭찬이 쏟아지자, 그녀는 커피잔을 드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자신을 둘러싼 엄마들의 부러운 시선 속에서, 마치 ‘교육 멘토’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 사실은요, 공부방 잠깐 다녀오고 나면 매일 복습만 시켜요. 아이 성격이 좀 꼼꼼한 편이기도 하고요.”
겸손한 대답이었지만, 그 말에는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주변 엄마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그녀는 단단히 ‘100점 엄마’로 자리매김했다.
어떤 엄마는 아예 점수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웃기만 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올백이 쉬운 건 아니지.’
그날 카페에서, 한 명은 주인공이 되었고 나머지는 씁쓸한 커피 맛을 삼켜야 했다.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며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같은 공부방 다니는데 왜 우리 애는 성적이 별로지? 태권도 학원을 끊어야 하나… 수학 학습지를 하나 더 붙여야 하나…
엄마들 사이에 묘한 불안과 경쟁심이 감돌았다.
모두가 돌아서는 발걸음에 마음이 복잡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하지만 그 으쓱한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칭찬이 쏟아진 그날 이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점수에 집착하게 되었다.
‘다음 시험도 잘 봐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계속 인정해 주겠지.’
‘안 그러면 내 자존심이 뭐가 되는데...’
자신을 향한 부러운 시선이 자꾸 떠올랐다. 그 기대를 계속 유지해야만 할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이가 공부방에서 본 시험지를 들고 집에 왔다. 몇 개 틀린 문제들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무심히 넘기려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건 지난번에도 틀렸던 거잖아. 왜 또 실수해?”
목소리는 엄격했다. 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 맞아야 해… 그래야 엄마가 화를 안 내…”
공부는 더 이상 재미있지 않았다. 아이는 점점 주눅 들었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얼굴엔 걱정이 떠나지 않았다. 며칠 뒤, 기말고사 결과가 나왔다.
국어, 수학 두 과목에서 다섯 문제를 틀렸다. 여전히 평균 이상, 충분히 잘 본 시험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기뻐하지 못했다.
수학 시험지 85점을 손에 들고 아이는 끝내 울고 말았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시험지를 들고 엉엉 우는 모습에 나는 마음이 아렸다.
차분히 달래며 이야기를 나누자, 아이는 슬그머니 털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올백 받았을 땐, 저도 좋았어요. 엄마도 막 웃으셨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만화도 못 보게 하고, 문제를 틀리면 혼나요. 그냥 중간고사 때 올백 받지 말 걸 그랬어요.”
순수하게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던 똑똑한 아이였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올백이 ‘기준’이 되어버렸고, 아이는 그 기준에 자신을 계속 끼워맞추느라 힘들어했다.
나는 평소 교실에서 점수를 가지고 칭찬하지 않는다. 남을 배려하고 예쁘게 말하는 것을 칭찬한다. 아이가 받아쓰기 20점을 받아도, 구구단을 못 외워도 혼내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빛낸 사람들은 시험을 잘 본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재능을 잘 키운 사람들이었다. 섣부른 ‘100점 엄마’ 행세가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건 아닐까. 시험 점수는 순간의 숫자일 뿐인데. 초등 2학년에게 점수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그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요청했다.
아이의 성적을 둘러싼 부담과 부모의 기대가 아이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는지를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어머니, 아이의 성적을 공론화하지 말아 주세요. 아이는 틀려도 괜찮다고 ‘허락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원래 틀리는 게 당연한 존재입니다.”
나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 엄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올 백 엄마’라는 말이… 사실 너무 좋았어요. 순간 목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때부터 점수에 집착하게 됐어요. 나도 모르게 아이를 닦달했고, 잔소리도 많아졌어요. ”
나는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올백’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배우는 과정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경험이라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실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이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고 당부했다.
“어머니, 주변에서 추켜세워주면 그게 진짜 칭찬 같지요? 당장은 뿌듯하고 인정받는 기분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아이에게 족쇄를 채우는 일일 수도 있어요. 성적이라는 족쇄 말이에요.”
그날의 상담 이후, 아이는 서서히 예전의 명랑함을 되찾았다. 하지만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진짜 교육은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싶어하는가에 있다.
아이를 부모의 자존심을 세우는 도구로 삼는 순간, 그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자라게 된다. 틀려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100점보다 더 큰 힘이 된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올 백’이 아니라, 실수해도 존중받는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