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밤새 흐렸다. 날씨만큼 나를 주목하고 지켜보는 이가 또 있을까 싶었다. 밤에 석류에 대한 글을 썼는데, 석류의 배가 터지면서 책상 위로 피가 번져왔다. 펼쳐둔 책 사이사이로 배어든 아픔이 키보드를 타고 흘러서, 내 손을 적시고 말았다. 집중하던 순간을 깨뜨린 것은 손가락 마디까지 차오른 붉은 것이었다. 나는 쓰던 글을 그만두었다.
잘 참고 있던 마음이 웅얼거리고 있었다. 뜻 모를 웅얼거림을 들으려고 자세를 고쳐 앉았으나, 허사였다. 말은 말이 되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몸 안에 갇힌 채 출구를 찾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견딜 수 없어서 글을 쓴다"는 시인을 생각한다. 나의 하루는 와글거리는 마음과 거침없이 다가서는 사계의 출처를 알고자 애쓰는 시간의 연속이다. 그래, 아침까지 기다려보자.
새벽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이른 6시에 벌써 도착한 문장들이 나를 깨우고 있었다. 너희들은 방황하지 않고 나를 찾아와 일으키는구나. 이것이 나를 사랑하는 너희들의 방식이구나.
사람들은 사랑을 받으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데, 나는 어째서 일생 허기가 지는지.
따뜻한 소금물을 한 잔 마시고 심호흡을 했다. 손가락이 부드럽게 풀렸다. 마디마다 고여있던 핏물이 밤새 다 스며들었나 보다.
내게 배고픔은 대체로 감정의 허기 같은 것이어서, 그리운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외로움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해소된다. 옷에 묻은 기름때를 기름으로 지우듯이, 나는 외로움은 더 짙은 외로움으로 지운다. 내게서 멀어져 가는 것들의 이름을 적고, 그것들이 사라졌음을 다시 각성한다.
거리엔 아직 단풍 들지 못한 나무들이 섞여 있다. 머지않아 북쪽의 바람이 독촉장을 들고 올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저 느긋하고 한가한 표정은 저들의 본성인가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만 괜히 안달이 난다. 올해 열매가 시원찮은 사과나무는, 붉어지다 만 과실 몇 알을 달고 있었다. 낙과한 채 굴러다니는 것들이 밑동을 검게 멍들였다. 북풍은 그마저도 모두 털어갈 것이다. 냉정하게.
이른 새벽부터 나를 기다린 나의 문장을 한 번 쓰다듬어준다. 내일도 잘 부탁해.
오늘 날씨는 체감기온 12도, 습도는 58%.
서풍을 따라 곳곳에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리고 있다.
외투 깃을 여미고 밖으로 나가려 한다.
나에게 돌아온 문장들을 정성스레 눌러 적어 가슴 호주머니에 넣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