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우울을 불러오는 건 아니었다. 밝음이 오히려 나를 더 희미하게 만든다. 햇살 속에 숨어 있던 그늘이 깊어지면, 태양 아래서 나의 초라함이 또렷해진다.
삶은 천상의 나팔 소리를 따라가다가도, 때로는 절망의 몸짓으로 수그러든다. 내 안의 용기는 전진하지 못한 채 우울에 갇혔고, 무기력에 잠겼다.
"생각을 내려놓고, 출구를 찾아보자."
당신에게 겨우 뗀 말이었다.
마음이 가라앉을수록 생각을 멀리하고, 동사적 삶을 붙잡으려 애쓴다.
평생을 좇아온 ‘성공’, ‘행복’ 같은 명사들은 묵직하다. 당신이 집착해 온 크고 먼 명사들은, 우울 속의 당신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중력이 세다. 화려할수록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러나 때로 성공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행복은 성공의 틀에 맞춰 자신을 구겨 넣는다. 마치 애초에 그러하라고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
우리가 '성공'이라는 명찰을 가슴에 달 때, 그 이름은 나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일 때가 많다. 타인의 성공이 눈부실수록 나의 행복은 쪼그라들고, 도달하지 못하는 목표 앞에서 삶의 의미는 점점 옅어진다.
성공이나 행복 같은 추상 명사의 무게에 짓눌릴 때, 동사는 가벼운 출구가 되어준다. 동사는 ‘지금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동’으로 기지개를 켠다.
행동은 우울을 부드럽게 스트레칭한다. 정체된 마음을 살짝 흔들어 깨운다. 그러고는 당신의 팔을 잡아끌어 한적한 공원으로 데려간다. 거대 담론 뒤에 숨은 행복을 불러내어, 일상으로 스며드는 법을 알려준다. 소소한 것에 깃들어 있던 의미를 유쾌하게 흔들어 깨운다.
움직임은 감정의 에너지를 발전(發電)시킨다. 몸의 작은 발전소에서 켜진 열이 골수와 심장을 지나 온몸으로 번져 간다. 감정이 늪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살짝살짝 밀어 올려준다.
상처 난 마음이 일어서지 못할수록, 생각은 물러 세우고 동사를 품어야 한다. 동사는 우울한 명사의 손을 잡아 다시 본래의 자리로 데려다준다.
걷는다. 정리한다. 쓴다.
가까운 거리부터 걸어보고, 가장 가까운 책상 한 칸을 정리하고, 하루의 끝에 한 줄을 적어보는 것. 이것이 당신이 추구하던 명사에 다가가는 동사의 첫걸음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움직여서 스스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그 미세한 움직임 하나로, 다시 오늘을 건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