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토성산
글쓰기를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나중에 어떤 글이 되긴 할까?’
당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내가 쓰는 문장이 어딘가 불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결국은 하나씩 써보는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다시 자리에 앉는다.
순자의 「권학편」에 이런 문장이 있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바람과 비가 그 안에서 저절로 일어난다
(積土成山적토성산 風雨興焉풍우흥언)
흙 한 삽, 두 삽으로는 아무것도 안 된다. 그런데 그걸 매일 조금씩 쌓다 보면, 언젠가는 그게 산이 된다. 그제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신기하게도 글도 그런 것 같다. 매일 한 줄, 두 줄 써놓은 게 처음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어느 날 그게 나의 산이 되어 있다. 그 안에서 누군가와 통하고, 어떤 감정이 전해진다.
또 이런 문장도 있다.
물을 쌓아 깊은 연못이 되면, 그 속에서 신령한 용이 생긴다.
(積水成淵적수성연 蛟龍生焉교룡생언)
생각이 깊어지고, 감정이 고이고, 사소한 일들이 차분히 가라앉으면, 어느 날 불쑥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이 나온다. 용처럼, 뜬금없이.
나도 가끔은 걱정한다.
‘나는 용이 되지 못하면 어쩌지? 바람과 비가 안 생기면 어쩌지?’
근데 그럴 시간에 흙을 더 쌓고, 물을 더 모으는 게 먼저라는 걸 조금씩 배워간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 들수록, 손이 굳는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 한 줄이라도 내가 느낀 걸 솔직하게 적어보자고 다짐한다.
그게 쌓이면 산이 되고, 연못이 되고, 언젠가 나도 모르게 바람이 일고, 문장이 살아나지 않을까.
유명한 작가가 못 되는 건 괜찮다. 정작 두려운 건 흙을 쌓지 않는 나태함이다. 말만 하고 쓰지 않는 것, 그게 제일 무섭다. 글쓰기는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천천히, 묵묵히, 나만의 흙을 쌓고, 내 물을 모으는 일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언젠가 바람이 불고, 용이 일어날 거라고 믿는 것.
글은 결국 자연과 비슷하다. 쌓고,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 오늘도 나는 한 삽 더 흙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