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km의 밥

- 먹고 살아온 날들에 대하여

by 이채이

죽음과 노년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날수를 세었다. 살기 위해 내가 먹었을 밥그릇의 수를 헤아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 밥공기를 수직으로 쌓으면 높이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공기의 높이를 6cm라고 잡고, 하루 세끼를 먹었다고 계산했더니 약 3.35km에 달했다.


이 길이는 한라산 정상보다 훨씬 높고, 설악산 대청봉 두 개를 포개놓은 것만큼 된다. 그래도 잘 가늠이 되지 않아 63 빌딩으로 환산해 보았다. 63 빌딩 13채 반. 지금까지 살았다는 이유로 내 입과 장을 거쳐 간 밥이 그만큼의 높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세끼의 공깃밥에는 바쁜 날의 허기와 아이를 챙기며 급히 넘긴 한 끼, 차분히 씹으며 생각하던 저녁 그리고 말없이 위로가 되었던 순간을 모두 합친 값이다.


기쁜 날에는 밥알이 절로 입 안에서 녹아내려 목 넘김이 좋았다.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은 식상하지만, 그런 날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덤덤한 날에는 그저 습관처럼 수저를 움직여 입 안에 넣었다. 밥의 온기나 맛에 집중하지 못한 채,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며 하루를 통과했다. 그날의 밥은 기쁨도 위로도 아니었지만, 폐부 깊숙이 박힌 산소처럼 그저 나를 살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도 밥을 먹었다. 그날은 내가 밥을 먹은 것인지, 밥이 나를 먹인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혼곤했다. 눈물이 자꾸만 밥알로 섞여 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은 모래로 비빈 밥을 먹는 것 같았다. 그 모래 밥은 내장을 훑듯 긁어내리며 오래 머물렀다. 아픈 자리에 진물이 고이듯이.


살다 보니 밥은 가끔 축복이 되고 무심한 날에는 생을 유지하는 동작이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는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밥은 그렇게 나를 먹이고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더 이끌어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만약 내가 100살까지 산다면 나의 밥공기는 거의 구름에까지 닿을 것이다. 무심히 밥을 먹고 생각 없이 살던 하루에게 미안해진다. 나를 먹이고 살게 다독여온 밥에게 더는 무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내 입이, 내장이 밥을 거부할 때 마침내 나는 죽을 것이다. 늙고 병들어 죽기 전에, 노년의 밥공기가 또 하나의 산을 쌓기 전에, 나는 밥이 내 삶에서 맡아온 임무를 떠올린다.

밥은 위로이면서도, 살아 있으라는 윤리였다.

나는 누군가의 하루가 버거운 순간마다, 그 곁에 놓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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