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心醫)

마음까지 치료하는 자

by 이채이

심의(心醫)라는 말이 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인데, 환자의 마음을 읽어 마음 깊은 곳을 치유하는 심의가 의사 중의 최고라 했다.

20년을 알고 지낸 한의사가 있는데, 그분의 진료 방식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는 대기 중인 환자의 수에 개의치 않았고, 멀리서 방문한 나를 오래 문진 했다. 그는 차분하게 나의 맥을 짚었다. 맥박은 내 심장의 울컥거림이었고 살아온 삶이 만들어 낸 규칙성 같은 것이었다.


한약보다 더 중요한 처방이 있다며 곁에 있는 남편에게 일러주었다.

한 달에 한 번은 나를 무조건 노래방에 데리고 가서 노래를 부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가슴에 쌓인 울분이 많아서 가슴이 시원해지도록 마음껏 노래하게 하라는 것이 첫 번째 처방이었다.


이 여자의 마음에는 불살라버리지 못한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어서 시원하게 털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대청소를 하듯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게 하라는 말은, 내 안의 불 관리를 잘하라는 말로 읽혔다.


매일 밥을 먹을 때 무조건 한 숟가락을 더 먹으라는 것이 두 번째 요청이었다.

하고 싶은 많은 일을 해내고 싶으면 덜어내지 말고 밥을 한입 더 먹으라는 충고였다.

한재(一劑) 한약을 지어먹는 것이 효험 있는 게 아니라 했다. 몸을 지켜나가는 것은 일상에 스며든 습관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랜 객지 생활로 음식에 신경 쓰지 못한 채 살아온 세월. 내 몸에 남긴 것들이 하나둘 터지고 있었다.


노래하라는 처방이 마음의 묵은 때를 걷어내는 것이라면, 음식을 더 섭취하라는 말은 육신의 건강을 스스로 지키라는 말이었음을 안다.

그리고 그가 건넨 마지막 말은 더욱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이 여자가 하고 싶은 일은 하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 선량하게 살아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같은 규율과 도덕 윤리의 보이지 않는 사슬에 갇혀 살아온 나에게 그는 마음대로 하라는 처방을 내린 것이고, 그것을 지켜볼 남편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한의사를 내 인생 최고의 심의로 여긴다. 당시 나는, 가난하고 힘든 초년을 지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중차대한 임무를 껴안고 있었다. 그런 내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문의 열쇠를 건네고, 안전하게 도착하는 법까지 알려주는 기분이 들었달까.


그 후 나는 내 몸과 마음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음식 한 점을 먹을 때도 아름다운 그릇에 담고, 일상은 가족의 행복을 최우선하는 방향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차갑던 손은 따뜻해지고 말은 온순해졌다.

우리는 유모차를 밀고 가끔 노래방에 갔다. 노래가 내 목구멍을 타고 공명하며, 마음 구석구석을 쓸고 지나갔다. 식사를 할 때면 꼭 한 숟가락을 더 먹으려 했다. 꼭꼭 씹고 영양이 고루 퍼지길 상상했다. 그리고 방학이면 멀리 여행을 떠났다. 학기 중에는 책을 읽으며 다음 여행을 준비했다.


가끔 그가 달여 보낸 한약을 먹으며, 자연이 건넨 풀뿌리에도 감사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20년을 넘어가고 있다.

중년의 한복판을 지나는 어느 날, 나는 잠시 잊고 지낸 그분을 다시금 기억한다. 소모되는 부품처럼 불량해질 수 있던 내가 육체와 정신의 어긋남 없이 잘 버텨온 것은 그분의 의술이 내 맘에 아름답게 연주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속삭임이 들려온다. 거울 속 모습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눈길을 내 마음속으로 뻗친다. 불꽃은 밤마다 가슴속 구석구석을 데우며 꺼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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