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끝에 핀 라일락

by 이채이


스마트폰 속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장된 사진 속에서 옅은 기척이 번졌다. 화면을 넘기던 손가락이 멈추었다.

지난봄을 농밀하게 찔러대던 라일락의 기억이 흩어지지 않은 채 코끝에 맴돈다. 마당 끝까지 은은하게 찰랑이던 향기는 라일락이 간직한 냉정한 실존의 법칙이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란 피어나기 시작한 꽃송이처럼 우연히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한 송이 꽃을 보며 그 운명이나 존재에 구태여 의미를 강화하지 않듯이, 인간도 미리 정해진 본질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장미가 하나의 완결된 형상으로 피어난다면, 라일락은 작은 꽃봉오리를 다닥다닥 붙든 채 가지의 아래부터 피어난다. 위쪽에는 언제나 아직 열리지 않은 봉오리를 남겨둔다.


라일락을 들여다본 이들은 안다. 그들에게는 장미처럼 완결된 순간이 없다는 것을.

이미 핀 꽃과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 그리고 꽃눈이 동시 존재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끊임없이 잇대어 온 인간의 삶이 겹쳐 보인다. 피어버린 꽃보다 이제 막 터지려는 꽃봉오리에 향이 가득하다. 그 향기에 벌들이 머뭇거림 없이 드나든다.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는 만개(滿開)의 결여다. 그 결핍 안에서라야 깊은 향이 자라난다. 카페에서 음료와 디저트를 고르려 할 때처럼, 무엇이 정해지지 않은 결여의 상태일 때 비로소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번호표를 호명받고 앞으로 나서는 대기자들처럼, 라일락은 질서 있게 개화한다. 피고 지고, 다시 꽃을 머금는 놀라운 연속성 속에서, 신의 관여도 인간의 개입도 마다하고 자유롭게 피어난다. 모든 인간의 죽음이 그러하듯, 라일락도 제 나름으로 낙화한다.

라일락은 한 번에 피고 지지 않는다.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꽃을 열고, 아직 피지 않은 미완의 끝을 공존한다. 라일락이 끝까지 봉오리를 남기는 방식은, 실존이 완결되지 않은 채 세계 속에 열려 있음을 기억하게 한다.


*사진은 'baram'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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