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문다는 것은, 어디에 앉을지를 정하는 일이다. 집 안의 의자 수를 헤아리니 열네 개였다. 소파와 윙체어, 베드벤치와 스툴은 제외했다. 나는 집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다. 공간과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 어울린다.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걸어갈 때면 식탁에 놓인 의자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논다. 소곤소곤한 대화를 나누다 들킨 것처럼 잠시 정적이 흐른다. 나는 웃으며 지나치고, 결명자차를 끓여 컵에 담아 온다.
저 멀리 창가에 홀로 있는 윙체어가 나를 보고 눈짓을 한다. 잠시만 와서 밖을 보라고 채근한다. 맨발로 타일 바닥을 걸으면 매끈한 감촉에 기분이 좋아진다. 윙체어에 앉아 밖을 보기도 하고, 곁에 놓인 테이블 위의 책을 펼치기도 한다. 햇볕이 피부를 간질이면 노곤해져 잠시 잠이 들기도 한다.
점심을 먹으러 나오면 식탁 의자들은 한결 분주하다. 어디에 앉을 거냐며 묻는다. 주로 앉는 자리는 정해져 있지만, 가끔 다른 의자에 앉으면 좋아라 쾌재를 부르는 녀석들이다.
의자는 사람을 부른다. 홍차나 커피를 마실 때는 창가에 놓인 의자로, 맥주나 치킨을 먹을 때는 이상하게도 소파 쪽으로 끌려간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다른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들처럼, 의자마다 각자의 일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낸다. 요거트에 상큼한 블루베리를 넣고 캐슈넛을 한 줌 얹는다. 잘 익은 바나나를 얇게 썰고, 아보카도가 좋을 때는 반쪽만 쪼개 더한다. 삶은 달걀은 껍질을 벗겨 담고, 그 위에 소금을 한 꼬집 뿌린다. 손질된 양상추와 토막 낸 토마토를 볼에 넣는다. 발사믹 드레싱을 준비한다. 사우어크림 빵을 한쪽만 썰어 굽는 동안 뜨거운 물에 홍차를 우린다. 레몬을 썰어 홍차에 띄우면 아침 준비는 끝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의자들은 박수를 치며 제 자리 앞으로 음식을 가져다 놓으라고 성화다. 혼자 먹는 식사지만 자리를 잡고 앉은 의자들 덕분에 식탁은 비어 보이지 않는다. 늦게 퇴근한 딸의 식사를 지켜보는 부모라도 되는 양, 느긋하게 먹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만 같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는 소파에 기대어 본다. 쿠션을 베개 삼아 누울 수 있는 소파가 유독 푹신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화면을 보다가 잠이 드는 순간은 소파가 자장가를 불러준 덕분이다. 부드러운 담요를 덮어 주고, 살살 흔들어 재운 까닭이다. 소파는 내게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시던 할머니처럼, 하나의 인격을 가진 존재처럼 느껴진다.
의자마다 성격이 있다. 식탁의 의자는 마음 놓고 둘러앉게 해서 사교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윙체어는 느긋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고요하게 늘려준다. 베드벤치는 잠들기 전 벗어 둔 옷을 받아 안고, 아침이 올 때까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런 성격이다.
의자가 있는 풍경 속에서, 나는 혼자가 되지 않는다. 오늘도 집에 오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