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 이어진 창문

- 괴테, 샤갈, 헤세를 생각하며

by 이채이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창 너머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지도 몰라.’ 지금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전부는 아니라는 막연한 감각. 어쩌면 그 감각이야말로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끄는 시작점 같다. 텁텁한 고정관념에 갇혀있던 내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환기해 주는 통로, 그게 바로 ‘창문’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창이 있다. 괴테에게는 자연이었다. 그는 식물 하나를 볼 때도 그냥 보지 않았다. 꽃잎, 줄기, 잎, 열매. 이렇게 서로 다르게 생긴 것들이 사실은 같은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아냈다. 그는 그것을 ‘원식물’이라고 불렀다. 마치 모든 식물이 하나의 원형에서 갈라져 나온 것처럼 말이다. 그걸 알아낸 건 과학적인 분석이 아니라, 반복해서 보고 또 보면서 생긴 직관이었다. 감탄이 쌓이고 자극이 더해지면,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딸깍’하고 무언가 맞춰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자극이 중요하다. 외부에서 오는 부드럽고 신선한 자극이 우리의 뇌를 흔들어 깨운다. 자극은 곧 질문이고, 질문은 생각의 시작이다.


그림은 자신에게 창문이었다고 말한 샤갈. 그리고 창문을 통해 그는 다른 세계로 날아올랐다고 했다. 그 말속에 담긴 감정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다.

샤갈의 생각은 작은 창문을 타고 밤하늘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신부로, 눈 내리는 마을로, 중력이 사라진 존재로 나타났다. 현실의 질서에서 벗어난 샤갈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하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기이하고 낯선 존재들이 저마다의 시를 부드럽게 노래하는 듯하다.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그것!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라고 고백한 헤세처럼,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그것을 어떻게 찾고, 또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어떻게 더 명확하게 삶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까. 내 안에서 솟아 나오려는 그것은 무엇인가?


누군가는 자연을 통해, 누군가는 예술을 통해, 또 누군가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창을 연다. 나에게 그 창은 ‘책’이다.

책은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이자,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렌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고정관념이 흔들리고, 움츠리고 있던 감각이 깨어난다. 내가 책을 통해 낯선 세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듯,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창이 분명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창을 닦고, 그 너머를 들여다보는 마음이다.

‘아, 내가 몰랐던 나, 내 안의 그 거인이 움직이기 시작했구나.’라고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내 안에서 솟아오르려는 그것’을 진짜로 살아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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