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란

by 이채이



토란 껍질을 벗기는 아침, 작은 알 하나에 계절의 시간이 겹겹이 숨어 있었다.
루시아의 텃밭에서 가을내 여문 토란이 또르르 굴러 내게까지 왔다. 땅의 온기를 알처럼 품어 동글동글해진 토란은, 추운 겨울 아침에 먹어야 알맞다.


열대지방에 살던 토란은 비대한 줄기나 잎에 비해 왜소한 모양새로, 땅속에 다글다글 붙어서 자란다. 줄기와 잎을 가을볕에 잘 말려두면 겨우내 토란대 볶음이나 나물을 먹을 수 있고, 정월 대보름이면 찰밥을 토란잎 나물에 싸 먹을 수도 있다. 양이 얼마 되지 않기에 더욱 귀한 토란은 반은 토란탕을 끓이고, 몇 알은 남겨서 싹이 자라는 풍경을 즐긴다. 토란에 물을 부어두면 초록한 싹이 나오고 잎이 펴진다. 푸릇한 잎들이 흐릿한 겨울을 잠시 잊게 한다.


나는 토란탕을 끓일 때 소고기를 넣지 않고 쌀뜨물에 들깨가루를 넣는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맛을 살려 끓인다. 국물이 고소하고 틉지다. 미끈하면서도 포근포근한 토란탕을 한 그릇 먹고 나면, 이마에 땀이 나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고향의 음식을 먹은 탓이리라.


새벽에 깨어 토란탕에 대한 글을 쓴다. 한 그릇의 음식이 완성되기까지 스쳐 간 시간과 사람의 노고를 떠올린다. 흙을 갈아 씨를 심고, 여름날 장대비를 견딘 계절까지 오롯이 식탁에 오른다.


한 알이 싹터 한 그릇의 음식이 되고, 다시 한 줄의 글이 된다.
한 알의 씨앗은 결국 한 그릇의 삶이 되고, 한 줄의 기억이 된다.


나는 이 무한히 이어지는 연상의 논리를 온전히 써내지 못한다. 다만 더듬어 생각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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