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환과 함께하는 아침긍정확언 중에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본다. 문제는 대부분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좁고, 가능성을 가로막는 벽을 자기가 쌓아놓고도 눈치를 못 챈다. 그 벽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고정관념'이라고 부른다.
“원래 그런 거야.”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돈은 벌기 힘들고, 부자는 따로 있어.”
이런 말들 속에는 낡고 단단한 생각의 껍질이 붙어 있다. 그런데 이 껍질, 깰 수 있다. 그 도구가 고전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줄거리만 따라가지 않는다. 문장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그리고 거기서 생각을 시작한다.
예컨대 <금각사>에서 한 단락을 읽다가 '세계는 인식이냐, 행위냐?'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바로 철학 놀이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세네카는 "마음을 훈련 시키면 어떤 일도 고통스럽지 않다."라고 했다. 이처럼 스토아 철학자들은 세상은 건드리지 말고 내 마음 판을 바꾸라고 했다. 세상은 그대로 둘 수밖에 없고 대신 보는 각도를 바꾸라는 얘기다. 인식의 힘을 믿는 거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인식만으로는 부족할 때도 있다. 그럴 땐 움직여야 한다. 몸을 쓰고, 실천해야 한다. 그게 ‘행위’다.
나는 바람과 돛의 비유를 자주 떠올린다. 바람은 외부의 조건이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다. 반면, 돛은 내가 조정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바람을 막을 수는 없지만, 돛을 조절해서 배의 방향을 바꿀 수는 있다.
바람은 인식으로 받아들이고, 돛은 행위로 움직인다. 그 둘을 구분하는 감각이 삶을 좌우한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책을 덮고 묻는다. 나는 지금 뭘 바꾸려 애쓰고 있지? 바람인가, 돛인가? 이런 질문 하나하나가 내 삶의 좌표를 조정해준다.
세상을 ‘얼마짜리냐’라는 틀로만 보면, 결국 ‘얼마’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고정관념을 깨고 나면, 시선이 높아지고 사유의 폭도 넓어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믿음도 커지고, 돈 그릇도 커진다. 그러니 고전 한 권 들고 앉아 한 문장을 붙잡고 오래 생각해보자.
사유하는 그 시간이 나를 구하고, 나를 키운다.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나는 분명 조금 더 전진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