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선물 받았습니다. 금전적 여유가 많지 않은 내게 산타의 선물처럼 던져진 것입니다. 선물 포장지를 뜯었더니 '영국의 시골 마을'이 담겨있었습니다. 영국의 봄은 가본 적이 없는데 그 계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로즈 가든에 가서 꽃잎을 한 장씩 모아보고 싶습니다. 핑크를 따라 걷다가 노랑에 걸려 넘어지고 싶습니다. 장미가 머금고 있는 향기를 수집하려 합니다. 밀밭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훼방을 받지 않도록 등지고 서서 오래 향기를 맡고 싶습니다. 향에 잠기는 일은, 신이 땅의 것을 받아 가는 방식이라지요. 그런 시답잖은 생각도 미리 해둡니다.
낡지만 정원이 아름다운 집에 머무르며 아침의 산책을 하려 합니다. 시골 할머니의 억센 영어 사투리 탓을 하며, 듣고 말하기의 힘듦을 겪고 싶습니다. 처음 맞는 봄의 한복판을 걸어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한결 느슨해집니다.
나에게 여행을 선물한 사람은, 과거 내가 여행을 선물했던 사람입니다. 함께 여행한 사람은 힘듦과 즐거움까지 나눈 좀 더 끈끈한 사이가 됩니다. 자기 행복을 떼어 건넬 줄 아는 사람은, 받는 이보다 먼저 기뻐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대학 시절 4년을 살았던 길가의 집이 생각납니다. 불구멍을 잘 조절해서 연탄 한 장도 알뜰하게 썼습니다. 불이 꺼지면 다시 살리지 못한 채 등교해야 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하루가 차가운 방에 대한 걱정으로 띄엄띄엄 채워지곤 했습니다.
집으로 올 때 한밤의 대문간엔 목련이 환했습니다. 내 방의 연통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살려놓은 불꽃이었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당신의 밑불을 꺼내서 내 방의 온기를 살려주었습니다. 내가 4년을 기쁘게 살았던 이유는 오며 가며 세심하게 나를 돌봐주던 그녀의 마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것은 그녀가 내게 보내는 넘치는 선물이 분명했습니다.
몇 년 전에 옛 자췻집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단층집은 허물어지고 삼 층 건물엔 카페가 들어섰고, 목련이 섰던 자리에 주차장이 깔렸습니다. 이 번듯한 건물은 젊은 날의 가난했던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주차를 하며 기억 속 목련에게 인사했습니다.
젊은 남자가 유자차를 주문받았습니다. 예전 살던 방의 창가에 앉아 차를 마셨습니다. 뜨거운 김이 허공으로 퍼졌습니다. 삼십 년 전 늦은 귀갓길에 흘러나오던 연통의 김처럼 따스했습니다.
밑불이 사라지지 않고 다른 방으로 건너가듯, 가난도 그랬습니다. 유자차의 향이 오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