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내가 많이 읽는 것, 자주 만나는 작가, 그리고 자신의 성격을 닮는다는 것.
명확하고 단정한 어조로 말하는 작가를 자주 만나면 나도 모르게 강렬한 색채가 묻어나고,
단문 위주의 글을 쓰는 작가의 글을 읽으면 메시지 전달이 정확하되 문학성이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고, 감성적인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문장이 길어지고 유려해지나 깔끔한 맛이 떨어지는 듯하다.
장르 또한 마찬가지여서 소설이나 에세이를 주로 읽을 때와 자기개발서를 읽을 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글을 읽을 때 확연한 차이가 있다.
열렬한 독자로 남겠다고 하면 글쓰기에 얽힌 고민의 스위치를 꺼도 되지만, '글을 완성해보리라'하는 작가의 마음으로 글을 읽으면 입장이 달라진다. 글 속의 멋진 표현과 전개 방식을 만났을 때, 다른 작가들에 대한 무한 질투와 좌절을 경험한다.
그리고 좌절하려는 순간 헤밍웨이가 말한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에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노인과 바다를 200번이나 고쳐 썼다는 고백은 위로가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기 그지없다고 말했을 때, 하루키는 말했다.
"그 작품이 소설로 통용된다면, 누구나 그 정도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적어도, 그런 말을 한 사람 그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썼다. 그것은 역시 내 안에 그럴만한 필연성이 존재했다는 뜻이리라." 하루키의 이 말에 용기를 얻는다.
하루키조차도 글이 한 줄도 써지지 않은 날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매일 평범하기 그지없는 낱말들을 그러모아서 의미 있는 문구를 조합하고 낯선 은유를 만들어 냈다.
별 볼 일없어 보이는 나의 글에 생명의 숨을 더해줄 것은 바로 지루할 정도의 반복성. 하루키 같은 꾸준함과 일상의 지겨운 반복에서 비로소 감동의 글이 탄생한다는 말은 위안이 된다. 순간마다 받아들이는 감동의 코드가 다르고 표현하고픈 주제가 다르기에, 나는 글과 글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앞을 알아볼 수 없는 아득한 글의 수해(樹海) 속에서 나는 '내가 어디쯤에 있나' 가늠해본다.
온전히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글쓰기의 바다 위에서 길을 잃어봐야 한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본 자는 밤하늘의 별이 유일한 길잡이임을 안다. 어두운 밤이 되고 비로소 별이 모습을 드러낼 때, 나의 '남십자성'을 보며 항구를 찾아 돌아와야 하는 것. 하여 나의 '남십자성'을 찾는 이 과정은 필수 불가결이다. 매일 쓰레기 같은 글을 생산하는 것은 나의 문체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여겨야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