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의 해가 거실로 환하게 들어왔습니다. 윙체어에 앉아 창가의 제라늄에게 말을 겁니다.
봄의 해는 제라늄의 꽃잎처럼 활짝 폈습니다. 모처럼의 충만함을 쪼이고 있습니다.
꽃잎을 세듯 페이지를 넘기며 책을 읽습니다.
얼마 전 들렀던 산속 집에 지붕을 가득 덮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문득 궁금해집니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의 그림자를 밟고 서둘러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 속에서, 단 한 사람이 나무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겨울엔 꽃눈을 기다리고, 봄이면 눈꽃을 돌아봅니다.
꽃눈과 눈꽃이 만나면 올봄은 헛일일 텐데 말이지요.
그 둘이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몇일이 남았습니다.
글자 하나의 뒤바뀜으로 일어날 참사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림자 속으로 들어 간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런 날을 세지 않을 테니까요.
사막의 사람이 뒤를 돌아보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왔던 곳을 향해 오줌을 누면서 말입니다.
사막에도 눈이 내린다고 합니다. 아깝게도 금세 녹아버릴 것이지만, 그것은 목련이 지는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 툭 떨어진 꽃잎이 잠시 제가 있던 가지를 올려다본다고 합니다.
꽃잎 한 장 더 넘겨봅니다.
사람이 떠나면 빈자리가 생깁니다. 그곳을 바라보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나의 마음뿐 입니다. 사막의 사람처럼 잠시 길을 잃습니다.
전화를 합니다. 용건은 '그냥'입니다.
별일 없지? 그냥 했어. 잘 지내나 싶어서... 이것이 전부인 전화. 몇 통을 하고 나면 누군가 떠난 자리를 잊어버립니다.
좀 길어지는 통화도 있습니다. 평소의 어머니라면 용건만 간단히 하시지만, 겨울 배추에 동이 올랐는지 박태기의 꽃이 피었는지 묻는 말에는 수십 가지 대답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조용히 귀로 받아낸 말이 마음에 가득 차면 나는 실없이 웃습니다.
고프다는 것은 그립다의 생활어입니다.
배만 고픈 것이 아닙니다. 마음도 고프고 사람도 고픕니다. 가끔, 아니 자주 고향도 고픕니다.
그림자를 밟고 전철에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움이 스며들 틈이 없습니다.
나는 고프다는 말 대신 봄의 그림자를 밟습니다. 발끝이 녹는 오후입니다.
차례차례 꽃을 내보내느라 그림자 속은 늘 분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