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에 대하여

– 우물 안에서 바다를 상상하며

by 이채이

소유에 대해 말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자기 계발서에서는 말한다.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상상하고 말하라. 그래야 이루어진다.”

하지만 나는 막상 입을 열기 어렵다. 내가 원하는 소유를 말하는 순간, 그것은 곧 내가 지금껏 살아오며 아는 세계의 틀 안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소유는 결국 내가 상상 가능한 것, 내가 측정할 수 있는 것,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망설이게 된다. 소유를 말하면서 오히려 소유의 개념에 갇혀버릴까 봐.


장자는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말할 수 없다. 그 세계가 너무 좁기 때문이다.”

(井蛙不可以語於海者,拘於虛也)

그 말이 가슴에 닿는다. 내가 지금 상상하고 말할 수 있는 ‘부’와 ‘소유’ 역시, 내 좁은 경험과 인식 안에서만 맴도는 건 아닐까. 내가 지금 우물 안에 있으면서도 바다를 논하고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조심스럽고 겸허해야 하는 일인가.

그래서 나는 황하의 신 하백이 북해악을 만난 장면을 떠올린다. 황하를 다스리며 거대하다고 자부하던 하백은 북해의 광활함을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이 한낱 물줄기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작은 하천도 되지 않는 내가, 그저 흘러가는 물방울 같은 내가, 거대한 소유를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해본다. 내게 소유란 ‘무엇을 얼마나 가지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넓은 생각을 품을 수 있는가’에 관한 일이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그릇이다. 그 그릇에는 지혜와 사유를 담는다. 생각은 말랑한 점토처럼 늘어날 수 있고, 지혜는 흐르며 확장될 수 있다.

나는 금강석처럼 단단하면서도 빛나는 사유를 갖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나누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소유’란 한 권의 ‘탈무드’ 같은 것이다. 오래도록 읽힌 한 권의 책이, 그 어떤 ‘부’보다 더 긴 호흡으로 나를 이끌 수 있음을 믿는다.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지금 내가 말하지 못하는 것, 아직 도달하지 못한 세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바다. 나는 상상 너머를 말하고 싶기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침묵 속에서 더 넓은 북해를 향해 가능성을 비워두는 일. 그것이 내가 원하는 첫 번째 소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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