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한 문장들

by 이채이

지천명에 책장을 열며 글을 쓴다. 버린 책과 남은 책에 대하여.


허술한 책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왠지 허술함이 편안하다. 지천명에 다다른 지금, 책장으로 인생의 충실함을 가늠하는 일은 허망하다. 색칠하지 못한 그림처럼, 나의 독서는 멈추어 있었다. 다 그리지 못한 자화상처럼 놓여 있는 그 그림이 애처롭다.

그 애처로움은 매듭짓지 못한 과거의 회한에서 비롯된다. 그 회한에는 책이 깊이 얽혀있다.

요즘은 글자가 겹쳐서 책 읽기가 어렵다. 초점이 흐려지면, 책을 덮는다.


스무 살 무렵에는 책에 굶주렸다. 도서관에 들어가 하루를 묻었다. 열람실에 책을 수북이 쌓고, 그것을 허겁지겁 읽었다. 대학 도서관을 다 읽어버리겠다는 야심 같은 걸 품었다. 쉬운 책, 어려운 책, 문학, 사상, 고전. 아무 책이나 집어 들었으되, 책을 선별함에 일정한 계통이 없었다. 배고픈 걸인이 눈앞의 음식을 가리지 않듯, 나는 책을 가리지 않고 삼켰다. 그건 허기진 자의 욕심이었다. 몇 권의 책만이, 내 20대를 위로했다.


학부 고학년이 되자, 밥 벌어먹고사는 문제가 문 앞까지 밀려왔다. 책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책장을 덮고, 나는 현실로 돌아섰다. 나의 독서는 그 지점에서 멈췄다.

한 번의 날갯짓으로 구만리장천을 날아가는 붕을 꿈꾸었으나, 타고 갈 파도를 만나지 못한 채 곤의 꿈은 고꾸라졌다.


삼십 대는 육아의 시간이었다. 당장 생명을 키우는 일은 지상 최대의 과업이었다.

나는 스승이 없었다. 스승 없는 독서는 눈밭에 찍힌 발자국처럼 어지러웠다. 발자국은 많았지만, 그 어디에도 길은 없었다.

그때, 길을 내주는 책을 만났다. 그 책은 고전을 체계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당위를 심어주었다.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고, 한 번의 의심도 없었다.

나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책에 썼다. 책에 스며든 시간이, 어느새 3년이었다. 나는 독서로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고 내 삶과 아이의 삶을 바꾸었다.


마흔 즈음, 나는 책장을 정리했다.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위대한 고전만 남겼다. 책을 박스에 담아 후배들에게 보냈다. 아낌없이 내놓았고 책은 처분되었다.

내가 최종적으로 남긴 책은 이백 권 남짓. 방을 가득 메웠던 책장이 텅 비었다. 나는 가볍게 숨을 쉬었고 홀가분함을 만끽했다. 두꺼운 겨울옷을 벗어던진 봄의 아이처럼.


그리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는 교만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시절의 독서는 교만한 구석이 있었다. 지적 허영에 빠져서, 있어 보이는, 도전감이 폴폴 풍기는, 남들은 전혀 읽지 않았을 만한 책들을 골랐다. 그러다 만난 벽이 있었으니, 칸트였다. 그의 문장은 나를 무릎 꿇게 했다.


한 줄 글이 책 한 권의 무게였다면 과장일까. 아니다. 한 페이지를 읽고 나면, 문장의 육중함에 육체가 눌리고 짓이겨지는 듯했다. 칸트는 내게 낯선 인도의 방언처럼, 조로아스터의 신처럼 해석 못 할 세계로 다가왔다. 나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칸트는 나에게 상처를 남겼다. 절망이었고, 열등감이었다.

그 감정은 오래도록 분노로 머물렀다. 시간이 흘러, 분노는 식었다. 그 격노의 시간 동안, 나는 독서에서 멀어졌다.


잘 삭은 분노는 오십이 되어서야 겸손으로 등장했다. 지천명의 독서는 다시 철학으로 돌아가도록 나를 다독였다. 그 다독임은 유한 것이어서, 시간을 허물고 오래 묵은 감정을 희석시키는 힘이 있었다. 골 깊었던 무관심은 왕성한 지식욕으로 나를 들끓게 했다. 빼앗긴 것들을 한꺼번에 되찾으려는 사람처럼, 나는 독서욕은 왕성했다.


나는 다시 책장을 비우고 있다. 단어 수집가가 낱말을 다듬고 품어서 한 권 책으로 엮듯이, 나의 책장에 황금빛 모국어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내가 아끼는 말들, 곁에 두고 싶은 문장들만 모은다. 문장을 수집할 때 나는 평온함을 느낀다.

언젠가 나의 모국어가 책이라는 형상으로 편집되어 꽂히기를 바란다. 거기에는 나의 실패와 고집, 책과 거리 둔 시간, 다시 읽기 시작한 날들이 담기길 바란다. 독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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