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그가 읽은 책은 허기를 달래는 빵이 아니었다. 그는 책을 뜯어먹었고, 뼈를 씹었으며, 진리의 뿌리까지 파고들었다. 진리는 늘 고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니체는 그 얼굴 뒤에 숨은 근원의 악함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찾은 진실은 존재를 뒤흔드는 고통이었다.
진리는 수천 년을 살아남은 두터운 관습의 옷을 걸치고 있다. 가진 자의 욕심과 오만, 살아남고자 발버둥 치는 자의 비루한 본능이 얽혀있었다. 거짓된 진리는 실존의 얼굴에 안대를 씌웠다. 살아남은 자들은 보려 하지 않고 죽은 자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저항하고 의문을 품은 사람은 죽음을 면치 못했는데, 마녀사냥이라고도 하고 종교재판이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불에 탔고 광장에 매달렸다. 그것은 경고였다. 마녀들은 살아남은 자 속에서 고통받았다.
이념이나 신념은 그 자체로 편을 가르는데, 처형을 지켜봐야 했던 시민들은 권력의 불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복종과 의문’의 미세한 틈에 권력은 끌을 넣어 벌렸고, 자극했고 군림했다. 시민들은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순응과 순교. 이 둘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정서를 공유했는데, 그 마음이 바로 순종이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는 희미하고 모호해서 장담할 수 없었다. 순종은 쌍생아의 숙명을 지녔는데 하나는 살기 위해, 하나는 죽기 위해 태어났다.
니체는 이미 존재하던 질서에 순응하지 않았고 왜곡된 진리를 들추었다.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파멸이었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순교였다. 순응은 살고자 함이고 순교는 죽고자 함인데, 순응은 역한 비린내를 풍겼으나, 순교에는 달콤한 피 냄새가 났다.
그는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왜 인간은 기꺼이 복종하는가?
누가 종교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의지를 속박하는가?
그들에게 구원은 없는가?
인간은 살기 위해 죽는가, 죽기 위해 사는가?
그는 벼랑 끝에 선 자였다. 비린내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살기 위해 순응하지 않았고, 죽기 위해 순교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물어야 할 것을 물었을 뿐이다.
죽는 순간까지 이해받지 못한 자였고, 그로 인해 ‘진리의 진실’을 보존한 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