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국어 과목만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어도 예외가 아니다. ‘티쳐스’ 프로그램의 조정식 선생님은 수능 영어 전문가로서 이렇게 말한다.
“중3까지 수능 영어를 거의 만점 맞던 학생이, 언어로서의 영어를 소홀히 다룬다면, 고3 모의평가에선 3등급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중학교 때까지 달려서 점수를 올려두고, 고등학교 때는 다른 과목에 집중하려는 학생들의 판단을 경계한 말이기도 하다.
2024학년도 수능 영어는 많은 수험생에게 충격을 안겼다. 1등급 비율이 4%대로 급감했으며, 이는 영어 영역의 ‘패턴 암기’식 접근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지문은 이전보다 더 추상적이고 복잡해졌고, 철학·문학·과학, 표와 도표 이해 등 다양한 분야의 맥락을 꿰뚫는 ‘읽고 이해하는 힘’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들로 교체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과 과외로 모의고사 영어 1등급을 받은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수능 시험이 끝난 후 성적은 3등급에 걸려 있었다.
그렇다면, 모의고사 영어를 만점까지 올렸던 아이들이 단숨에 무너져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해온 공부의 한계는 영어를 ‘언어 이해’가 아니라 ‘패턴 암기’로 접근했다는 데 있다.
지금의 수능 영어는 과거 영어의 틀을 깨고 있다. 사고의 깊이와 연결된 고도의 언어 이해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영어 고득점을 위해 단어 암기를 넘어 폭넓은 독서를 통한 문해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 조바심이 날까? 고2 모의고사 수준의 지문을 먼저 보자.
“If one does not fall in love, it may not be a universal trait of a rational human being.”
우리말로 바꾸면 이렇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합리적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 아닐 수도 있다.”
이 문장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는가? 쉽다고 느껴졌는가?
고3 수준의 문장은 더 구조적이다.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예외적 개인의 현상이 아니라, 집단적·보편적 현상으로서의 사랑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이성에 기반을 둔 합리적 판단이다.”
이 문장은 어떤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었는가? 아마 대부분의 학생은 여러 번 읽어야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능에서는 이와 같은 문장을 영어로 읽고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원문이다.
“The belief in love as a collective and universal phenomenon, rather than as an exceptional individual occurrence, is a rational judgment based on human reason.”
단어는 어렵지 않은데 의미는 금세 파악되지 않는다. 이런 지문을 막힘없이 읽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수능이다.
문해력은 단순히 문장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문장 사이의 관계, 글의 구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힘이다. 글을 관통하는 논리적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려면 강력한 문해력이 필요하다.
요즘 수능 영어는 바로 그 수준의 독해력을 요구한다.
이는 학생 개인의 부족함이라기보다, 영어를 언어가 아닌 ‘암기 과목’으로 가르쳐온 교육 방식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영어 실력보다 ‘문해력’이 먼저라는 말이 실감 날 것이다. 문장의 표면만 읽고 뜻을 짐작하는 수준으론 한계를 넘을 수 없다.
글의 구조와 논리를 꿰뚫는 해석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단어 수천 개를 외워도 무의미하다.
평상시에 독서라는 간단한 방법을 무시한 채 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진짜 영어 실력은 언어를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는 힘에서 나온다. 결국 문해력을 갖추지 않으면, 영어 성적은 절대 견고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