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가 읽히고 싶은 책을 중심으로
아이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 생길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쉽게 들켜버린다.
“이거 재밌겠다” 하고 건네는 순간, 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책을 흘겨본다.
부모의 바람이 섞여 있는 책은 이상하게도 무겁다. 아이들은 그 무게를 단박에 알아챈다. 그러면 책장은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법이다.
그럴 때면 나는, 정면으로 밀지 않고 조금 돌아서 건넨다. 슬쩍, 아이도 모르게.
내가 자주 쓰는 방법은 ‘교정 아르바이트’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을 콕 찌르는 문장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노트북으로 필사하기 시작했다. 이지성 작가님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책은 처음부터 아이에게 읽히기 위해 필사했다.
오타가 있어도 무시하고 가고 맞춤법이 어긋나도 일부러 고치지 않는다. 이게 바로 핵심이랄까. 필사의 진짜 목적은 나에게 있지 않고, 아이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그 오탈자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많이 주고 싶기 때문에 틀린 글자를 안고 간다.
하루에 서너 꼭지씩 필사하고, 프린트한 원고를 무심하게 아이에게 건넨다.
“오늘 밤에 교정 좀 해줄래?”
“글자당 200원이요.”
“좋습니다.”
이 짧은 대화는 계약이 되고 빨간색 볼펜을 든 아이는 필사 원고를 읽는다.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띄어쓰기와 구두점을 고치며 한 줄 한 줄 훑는다. 어색한 문장을 발견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고, 오탈자를 찾아냈을 때 아이는 환하게 웃는다. 작은 손에 쥐어진 펜으로 원고를 수정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 흐뭇한 일이다.
교정 부호를 알려주고, 틀린 글자는 직접 다시 써달라고 부탁했다. 하나의 문장에서 서너 개씩 수정할 거리를 찾아낼 때도 있다.
그럴 땐 “엄마, 이 문장은 이상해요” 하며 머리를 갸웃한다. 그러면 나는 웃으며 도움을 주고, 새롭게 인식한 문장 앞에서 아이는 뿌듯해한다.
이 방식에는 생각보다 많은 장점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장점은 부모가 읽히고 싶은 책을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가 수정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그 원고는 내가 건넨 필사책이라는 걸 잊어버린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읽는 동안, 아이는 맞춤법을 익히고 문장을 깊이 생각하는 것 같다. 문장의 의미가 끊기거나 호응이 어긋나는 부분을 스스로 찾아낸다는 것은 놀랍고도 가치 있는 일이다. 이는 단순한 읽기의 기술이 아니라, 글을 곱씹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부모가 읽는 책은 어렵고, 두꺼운 책은 재미없을 것으로 여기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교정 아르바이트를 통해 어른의 책을 조금씩 접하다 보면, ‘이런 글도 내가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반복하다 보면 ‘어떤 책이라도 읽을 수 있다’라는 용기가 생겨난다.
그리고 아이는 자긍심을 느끼게 되는데, 엄마가 읽고 있는 책을 자신이 고쳐준다는 경험은 아이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계기가 된다.
게다가 스스로 용돈을 버는 것 또한 아이에겐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는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슬쩍 손을 뻗어 건넨 필사 원고에서, 하나의 밑줄에서 시작되었다.
몸에 좋지만 맛없어 보이는 음식을 먹이려는 부모의 마음처럼, 아이에게 최고의 책을 읽히려는 노력 또한 꼭 빼닮았다.
멀리 가려면, 바삐 달리기만 하는 것보다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때로는 조금 천천히 가는 길이 가장 현명한 길이 된다. 기회를 만들어서 꼭 한 번 시도해 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