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생 이성 교제

-부모의 고민과 역할에 대하여

by 이채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아이가 이성 친구와 헤어졌단다. 놀란 건,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주중에는 기숙사 생활하고 주말에만 귀가하는 터라, 굳이 사생활을 꼬치꼬치 묻지도 않았었다. 내 아이가 누구를 좋아했는지, 어떤 관계를 이어왔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이제서야 아이의 이별을 맞닥뜨리고 있다.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될 일이다. 에릭슨 같은 심리학자의 이론을 대동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중·고등학생 시절이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성과의 관계를 탐색하는 시기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 시기의 이성 교제는 단순한 ‘연애’가 아니다. 감정을 조율하고, 관계의 경계를 배우며, 상처를 감내하는 인간관계의 연습이다. 성공적인 교제 경험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입시 시스템은 이런 정서적 성장을 충분히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 특히 고등학생이 이성 친구를 사귀는 일에 대해, 호의적인 부모는 많지 않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부모는 ‘성적 하락’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 없다. 결국 그 불안은 “대학 가서 해도 늦지 않아”라는 충고로 흘러간다.


아이들은 이를 잘 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부모 몰래 이성 교제를 한다. 부모의 걱정은 알고 있지만, 자기감정을 존중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아이를 숨게 만든다. 나 역시 몰랐으니까. 감정을 터놓을 시간도 공간도 마련해주지 못했던 셈이다.


문제는 헤어진 후의 감정이다. 기쁨과 설렘을 배우지만, 이 시기의 이별은 상실감, 배신감, 자존감 저하를 동반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학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집중이 되지 않고,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반복되는 우울한 감정 안에서 의욕이 사라지고, 실수는 쌓여만 간다. 단 한 문제로 등급이 갈리는 입시의 현실 앞에, 감정의 흔들림은 곧 치명적인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자책과 질책이 반복되는 악순환,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찬 바람이 불고 있을지 모른다.


자녀의 이성 교제를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막아서도 안 된다. 이성에 대한 감정은 이 시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다. 오히려 부모가 긍정적이고 열린 태도로 자녀의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 더 안전한 길이다.

중요한 건, 사귀는 동안의 감정보다, 헤어질 때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이 시기의 지나친 간섭은 때로 독이 될 수 있다.


이럴 땐, 잠깐 아이와 여행을 다녀오거나, 아이의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음속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다 쏟아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비판이나 조언보다는 “그랬구나”, “속상했겠네”라는 동감의 말 한마디가 더 큰 힘이 된다. 무엇보다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정서적 회복을 돕는 일, 이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렇듯 부모가 진심으로 이해할 때, 아이들은 누구보다 빨리 제자리를 찾는다.


핀란드나 스웨덴 등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는, 학생의 이성 교제를 숨기지 않고 학교 안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심지어 어떤 학교에서는, 아이가 이성 친구를 교실에 데려와 같이 공부하도록 허용하기도 한다. 핀란드에 거주했던 사람의 말이다.


“내 친구는 여자친구를 종종 수업에 데려와 옆자리에 앉혀서 같이 공부했어요.

선생님도 ‘좋은 관계라면 같이 성장할 수도 있지’라며 응원해 줬죠.”


물론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철학—신뢰, 수용, 감정의 긍정적 표현을 통한 건강한 성장—은 분명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창 감정이 예민한 시기다. 부모의 섣부른 충고나 간섭은 아이를 더 깊은 고립으로 몰 수 있다. 사랑과 상실의 감정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부모 세대가 학창 시절 품었던 연정과 다르지 않은, 진짜 감정이다.


사랑과 상실의 감정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부모는 그 감정을 깎아내리거나 가볍게 여기기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지지해 주는 자리에 서야 한다. 지켜보되 믿고, 훈계보다는 대화를 통해 감정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상실도 사랑도 모두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갈 힘을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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