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자녀들이 부모와 대화를 거부하는 이유
많은 부모들이 어린 시절 정성껏 양육하면, 아이와의 관계가 끝까지 순탄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그 시기의 양육이 '성적'을 위한 ‘조기 사교육’ 중심이었다면, 아이는 부모를 온전히 신뢰하기 힘들다. 부모의 관심이 자신에 대한 애정보다는, 미래에 받아야 할 점수에 있음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전두엽이 급속히 발달하는 초등 고학년부터는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뚜렷해진다. 대개 이때부터 부모는 ‘성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갈등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아이는 자율성을 원하고, 부모는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 관계는 점점 어긋난다.
“지금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부모, “왜 나를 믿어주지 않느냐”라고 되묻는 아이. 이 엇갈림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서 고성과 함께 관계의 균열로 이어진다. 좋은 성적을 향한 부모의 열망은 아이에겐 간섭과 압박으로 느껴지고, 이를 견디기 힘든 아이는 대화의 문을 닫아버린다.
이때 현명한 부모는 아이의 공부보다 먼저 정서적 연대를 점검해야 한다. 신뢰 없이 성적에 개입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과도한 선행과 성적을 압박하는 부모는 아이에게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결국 부모와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부모가 원하는 건 ‘좋은 성적’ 일지 모르지만,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신뢰’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 그런 믿음이 없는 공부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 거대한 벽이 된다. 이전부터 부모와 정서적 유대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다면, 갈등의 쓰나미를 부드럽게 넘길 수 있다.
우리도 아이와 갈등이 있었다. 그렇다고 바로 해결을 시도하지 않았다. 먼저 서로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갖고, 아이에게 “산책하러 가자”라고 제안한다. 걷는 동안 자연스럽게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듣는다. 이 산책은 단순한 걸음이 아니라, 고민을 해결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도 가끔 산책을 요청하며 솔직한 감정을 나눌 줄 알게 되었다.
정서적 연대는 평화로운 순간보다, 갈등의 순간에 진가를 발휘한다. 아동기부터 꾸준히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이 결국 사춘기의 폭풍을 견디게 하는 울타리가 되어준다. 공부와 성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 쌓아온 정서적 유대 덕분에 갈등 속에서도 쉽게 멀어지지 않았다.
교사로 25년을 보내며, 헌신적인 부모들이 하는 흔한 착각을 자주 보았다. 아이를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학원으로 내몰고 있는 모습이다. 쉬는 시간도 없이 늦은 밤까지 공부방과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은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공부를 해치워야 할 과제쯤으로 인식한다. 아이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학원 다니는 거 정말 싫어요. 근데 안 다니면 바보가 된데요…”
각종 학원, 학습지, 넘치는 숙제... 이런 것들 탓에 아이들이 공부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결국 학습 동기를 떨어뜨리고, 공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키운다. 부모가 알아야 할 것은, 아이가 스스로 배움의 재미를 발견하려면 ‘안정과 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에릭슨의 심리사회 발달 이론에 따르면, 초등 시기는 ‘근면성’을 기르는 시기다. 아이는 묵묵히 해내며 성취감을 얻는다. 그래서 부모는 “잘 다니고 있으니 괜찮다”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근면기의 아이가 참고 견딘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즐거움은 아닐 수 있다.
학원 스케줄을 채울 시간에 함께 걷고 대화하는 시간이 훨씬 더 값지다. 대화는 부모가 하고 싶은 말에 조준하는 것이 아닌 아이의 마음을 듣고 공감해 주는 대화여야 한다.
그렇게 쌓인 신뢰는 사춘기와 입시라는 큰 파도 앞에서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많은 부모들은 여전히 점수를 올려주는 마법 같은 방법이 있을 거라 믿는다. 그 끝에는 늘 학원이 있다. 그러나 공부에 ‘한 방’은 없다. 정작 부모가 믿는 방법을 아이가 따르더라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실망과 불신이 싹튼다. 열심히 한 것 같은데도 성과가 미미하다는 절망에 빠진 아이, 실망한 성적표를 보고 아이를 의심하는 부모. 그 틈새로 칼날 같은 말들이 오가며, 아이 마음의 문은 굳게 닫힌다. 문제는 성적이 아니라, 정서적 단절임을 기억해야 한다.
부모와 대화를 거부하는 아이를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은 부모의 ‘본래 마음’에 있다. 아이를 처음 품었을 때 간절히 바랐던 그 소원, “건강하게만 태어나라!”라는 그 순수한 기도를 기억하자. 그때는 성적도 명문대도 중요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의 정신적 건강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 마음으로 회귀해야 한다.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너는 있는 그대로 소중해.”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이 식상해 보이는 한마디가 아이의 닫힌 마음을 다시 열 수 있다.
하루쯤은 공부도 성적도 잠시 잊고, 아이의 존재 자체에만 집중해 보자. 진짜 중요한 것은 늘 성적 너머에 있다. 숫자로 만들어진 성적보다 관계의 신뢰가 먼저다. 아이의 삶에 오래 남는 건 성적표가 아니라, “엄마는 늘 내 편이었어”라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