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자 이야기해도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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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가장 심하게 앓고 있었을 때, 주변인들에게 알렸다. (가족을 제외하고)
그중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나도 가지고 있다." 이 말이었다. 그리고, "넌 너무 우울증이라는 병에 매여있어."라는 말이었다.
첫 번째 말을 들었을 때는 다들 말을 안 할 뿐이지 아픔과 힘듦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두 번째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병 때문에'라는 핑계 섞인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나?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병에 매여있는 건, 어떤 걸까.
다들 우울증을 가지고 지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것인가.
어떻게 매이지 않고 살아갈까? 궁금했었다.
지금 30살 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병으로 심각해져도 당장에 밥을 먹여주지 않고, 집세를 내주지 않고, 옷을 사주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에 해결할 문제는 내 곁에 있으니, 가족이 있으니, 나의 역할이 있으니, 아프더라도 견디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들, 정말 기특하고 대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유난이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는 엄살과 유난히 심하다 ; (여기서도 오냐오냐 자랐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렇지만, 난 정말 심각했다.
누구는 병을 심각하게 느낄 수 있는 것도 여유라고 말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다. 부모님의 집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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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든 말을 하는 것만으로 해소가 되더라. (살자시도 1차)
20대 중반이었고, 어디 회사 퇴사 전후였는지, 공무원 준비했을 때였는지,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무너져 내렸을 때였다.
집에서 한 시간을 걸어, 외할머니댁이 있는 강가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다리아래를 빤히 쳐다봤다. 칠칠흙같이 어두운 하늘을 강이 가득 담고 있었고, 틈틈이 가로등 불빛이 비쳐 간간히 반짝 빛났다. 고개를 한참 내려서 바라봤다.
밤 9~10시쯤이고 추워서 아무도 없을 줄 알았다. (그 당시 엄청 추워서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왜 인지 모르게 내가 그 난간에 간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이 하나둘씩 왔다. 같은 난간 라인 쪽에 커플이 밤 강가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뒤에 벤치엔 아저씨 한분이 소주를 하나 까고 드시고 계셨다. 밤 9~10시쯤이고 추워서 아무도 없을 줄 알았다. (그 당시 엄청 추워서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죽으려면 더 늦게 새벽에 왔어야 했나 싶었다. 여기까지 걸어온 게 아까워서 난간을 벗어나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 풀밭에 앉았다. 소주를 까서 마시고 미친척하고 들어가야겠다 싶었다(너무 추워서 들어갈 용기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리고 너무 답답해서 말은 하고 죽을 용기를 가져야겠다 싶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24시간 정신상담센터(?) 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살자 관련 영상을 많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저절로 암기를 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용기 내서 해봐야겠다 싶었다.(죽으려니 너무 무서워서, 이 사람이 잡아주면 잡히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막말하면 죽어버리려 했었다. 이전에 지자체 무료 정신과 상담 경험이 있는데 그 사회복지사는 공감능력이 없어서 힘들었었다.)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어요." "어떤 것 때문에 힘드신가요?" "~~~~ 가족도, ~~~~~내 현실도, 암울하고 불안해요." "네 많이 힘드셨겠어요. 정신과 상담은 받아보셨나요?" "네 받고 약도 먹고 있어요" ~~ 이야기를 나누며 차분해졌다.
"그러면 선생님 지금 집이신가요? 어디세요?" "잠깐 밖에 나왔어요" "밖에 어디로 나오셨어요?" ".... 이제 집에 들어가려 했어요" "그러면 지금 어디신지 알려주시면 도와드릴게요" "괜찮아요 집에 들어갈게요"
이후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전화 전 후로 펑펑 울고 술 먹고 토할 거 같아(술을 잘 못 마신다) 걸어갔는지 집에 가긴 갔다.
어쨌든 강가까진 갔으나, 그 난간을 넘진 않았고, 술 먹고 얘기하고 오늘은 날이 아니다 하며 집에 돌아갔다.
그렇게 그 이후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지쳐서 잠들고, 누워있다가 어느 순간 회복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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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엄마가 그날따라 너무 애틋했어. (살자시도 2차)
이날은 일주일 정도 계획을 세웠다. 설계회사를 그만두고, 사람이 무서워졌다.
당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공황까지 있었던 것 같다. 정신과 갈 힘이 없어 누워만 있다가. 쿠팡으로 밧줄과 연탄을 구매했다. 그리고 어떻게 죽으면 될까 고민하며, 운전해서 외할아버지 산소에서 죽거나, 운전한 차에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이 시기 1년 연속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때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 있고 싶었다. 나를 안아주셨으면 했다. 혼자는 무서워서..
날이 따뜻한 봄이었다. 이때 죽고 싶었다. 따뜻한 날 무섭지 않게. 택배 온 것들을 주섬주섬 방으로 가지고 와서, 소주 한 병을 구매하고 갈 준비를 마쳤다.
그날 자세한 건 생각이 나지 않는데, 부모님 집에 사니, 엄마가 계셨다.
엄마가 내게 어디 가냐고 물어보셨다. "00아, 어디가? 이거 먹어봐. 정말 맛있어." 눈물이 났다.
내가 죽으면 엄마는 누가 보살피지? (오랫동안 마음의 병을 가지고 계시고 따뜻한 분이시다)
나 죽으면, 엄마한테 누가 함부로 대해도 보호해주지 못할 텐데, 열받아서 어떻게 견디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엄마 부탁한다고 손 꼭 잡아주셨는데, 어떻게 뵙지 할아버지 얼굴?
여러 생각들로 눈물이 났다.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울면서 먹었던 거 같다.
그날 바로 힘내서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취직을 하고 사회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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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도 제대로도 못했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 읽는다면, 모르는 사람 누군가에게라도 자기 얘기 제일로 힘들다고 찡찡거리고 울어도 되고, 가족이 곁에 있다면 얼굴 한 번 보았으면 한다.
신기하게도 그런 결심을 한 날에 따뜻하게 해주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없다면, "제가 살아보자고 붙잡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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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무언가가 없는 삶도,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 sns 또래를 보지 말고.
큰돈은 없을지라도 주변에 다정히 소중히 대하고,
무엇보다 이글을 읽는 누군가가 스스로를 다정히 소중히 대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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