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낯선 이들에게 위로를 받는다.

라고 생각을 하지만, 개코같은 얘기다.

by 당근당근

드르륵드르륵, 꼬리 꼬릿, 노릿 노릿,

보리차 태운 냄새가 난다.

나는 이상하게 커피 원두 갈 때 나는 냄새가 태운 보리차 냄새 같다.

촌스러운 나,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익숙한 향에 긴장감이 풀린다.

알 수 없는 말들에 정신이 없었는데 탄 보리차 냄새에 미소가 나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었는데 누가 봐도 나는 여행자 같아 보일 것 같다.

오늘은 일단, 파리지앵처럼 보이는 데 실패한 것 같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내일은 파리지앵처럼 다녀보겠다.









다음날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은 어디를 가야 할지 지도를 펼쳐 본다.


입고 온 빨간색 스웨터는 옷장에 걸어두고

가벼운 긴팔 옷을 위아래로 갈아입고 숙소를 나섰다.

호텔 복도에서 마주친 흑인 여성이 나를 보고 씽긋 웃어준다.

부드러운 미소로 나도 응했다.

한국이 아님을 느낄 수 있는 첫 순간이었다.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다.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이 없다.

검은 머리의 내가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시선마저 좋다.


이방인이 되어 있는 지금.


때로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게 된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 시내로 들어서는 길에서

줄무늬 타이즈를 입은 핑크 점퍼 소녀에게 시선을 뺏겼다.

아빠일지 모르는 사람을 향해 가장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도 따라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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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을 따라 생각 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이번엔 작은 골목 입구에 분위기 좋은 커피숍을 발견했다.

노팅힐 영화에서 본 듯한 분위기를 가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시켜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웃고 떠들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서울을 떠날 때는 분명 사람들이 싫어서 떠났는데

나는 왜 또 사람들을 보고 미소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



생각을 해본다.

이제 마흔.

그런데 파혼을 했다.

첫눈에 반한 완벽했던 그녀와의 이별이 이처럼 담담할 줄이야.

그냥 가끔 멍~ 해질 뿐이지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힘들지 않다.

그녀에게 미안하지만

이별이 오히려 홀가분하게 느껴진다.

호텔로 돌아와 컵라면을 먹었다.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이어폰으로 한국 노래를 듣는다.

혼자 있고 싶어 떠나온 곳에서 갑자기 혼자인 게 싫어진다.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는다.







다음날

체크아웃을 하고 기차를 탔다.

지금 이곳과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이동했다.

약간 쌀쌀한 기운이 돌았다.

스웨터를 걸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숙소에 나올 때 옷장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했는데 가방에 옷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분명 방안에는 내 물건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나왔다.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분명 어제 옷장에 걸어두고

산책을 다녀왔고

저녁에 돌아와서 봤을 때

....


아!

그때부터 옷장이 텅 비어있었다.

생각을 해보니

맞다 그때부터 옷장에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옷장을 보고서도 아무 생각을 못했다.



아!

어제 산책을 나올 때 마주친 여성이 떠올랐다.

룸 청소를 하고 있던 흑인 여성.

나를 보고 씽긋 웃어주던 그 미소가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 알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도 또!!!! 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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