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 수선하기 040

12월 31일

by 지태엽

한의원에 다녀왔다. 주말 사이 회복세에 접어들지 않으면 그건 좋지 않은 신호라고 하셔서 긴장한 채로 한의원에 들어갔다. 지난밤 팔과 손등이 가려워서 잠을 설친 탓에 걱정은 불어나기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만족할 만큼 나아진 건 아니지만, 다시 회복세에 올라탄 걸로 보인다고 하셨다. 식단은 여전히 주의해야 했다. 계속 두통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위가 무리했던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는 답을 받았다.

근 10일간의 마음 일지를 들여다보면 늘 관자놀이 주변의 통증을 이야기하는데 이쯤이 아플 것이라며 짚어주신 부분이 관자놀이라 조금 놀랐다.

괜히 고기를 먹어도 되냐고 여쭤봤다가 이 꼴이 난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어차피 한 번쯤은 먹어야 했다고 해주셔서 조금 부채감을 덜었다.


걱정 없이 식사 메뉴를 정하고 마음껏 배를 채우는 사람이 부럽다. 친구가 밥을 먹자고 했을 때 ‘그래, 뭘 먹을까’ 아무런 제한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쫄깃한 빵의 식감을 느끼고 바삭하고 고소한 쿠키를 씹는 사람이 부럽다.

마음껏 튀김을 먹는 사람이 부럽다.

부러워하는 나를 그저 관망해 본다.

이렇게 부러울 땐 난 뭘 해야 할까?


평생 물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물에서 숨 쉬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불가능에 도전하는 걸까 아니면 물에서는 살 수 없다는 사고방식을 가능하다로 바꾸는 일일까.


가끔은 피부질환이 시한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숨 붙이고 사는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지난 몇 달은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25년도가 코앞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건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마음은 애매하게 둥둥 떠있어 오히려 불안정하다.

24년을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간다. 인생은 책처럼 내가 넘길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내 명줄과 함께 재생된 영화 같아서 고개를 돌릴 틈도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를 시간도 없이 봐야 한다. 내년의 나는 눈을 감고 영화를 회피할까, 단단한 마음으로 눈을 뜨고 한 장면 놓침 없이 직시할까. 눈 뜨고 직시해 모든 걸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전개로 흘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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