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은 깊이 더 깊이 밑으로 추락하게 하는 몹쓸 끈적함을 지녔다. 잡념이 많아질 때 행복한 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하는 행동이 있다. 신체 활동 안으로 나를 밀어 넣는 것이다. 신체 활동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육체 노동은 그 단순함이 나를 명쾌한 맑음으로 바꿔준다. 몸을 움직이고 움직이며 집중하다 보면 잡념은 사라진다.포털 사이트에서 ‘노동’을 검색해 보았다.
노동 (勞動)
1. 명사 몸을 움직여 일을 함.
2. 명사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국숫집을 하고 있어서 몸을 움직여 일하며 돈을 번다. 김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밥을 버는 것이다. 내가 들어서면 고요히 잠들어 있던 가게는 나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다시 살아난다. “샤르르” 꽃처럼 피어난다. 딸깍, 딸깍 스위치를 누른다. 주방에 불이 들어오고 간판 불도 켜 놓는다. 허리에서 넘실거리는 머리를 동여 매고, 앞치마를 두르고 끈이 풀어지지 않게 꼬옥 조인다. 오래 달리기 하기 전 운동화 끈이 풀어지지 않게 잘 묶는 것도 이런 기분일까. 주방화로 갈아 신는다. 쌀을 푼다. 물과 비율을 맞춰야 하기에(물:쌀=0.8:1) 계량 그릇으로 몇 번을 담는지 명심하며 쌀을 퍼낸다.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취사 버튼을 명징하게 누른다. 멸치 육수를 끓인다. 물까지 계량해서 인덕션 온도 8에 맞춰 놓는다. 끓기 시작하면 20분 끓이면 된다. 타이머는 필수다. 멸치 육수가 힘차게 끓을 때 아득히 깊은 바다의 향기가 명랑하게 풍겨 온다. 소꿉장난 하듯 하나씩, 재료며 그릇이며 도마, 칼, 숟가락, 젓가락이 제 자리에 있도록 한다. 면레인지 물까지 준비 완료가 되면 어느새 깨끗하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 밥 익는 냄새는 언제나 평안을 준다.
'앨리제를 위하여'가 울린다. 손님이 키오스크에서 주문한 메뉴가 주방 주문서로 들어오는 소리다. 메뉴를 한눈에 스캔하고 우선순위와 차례를 정한다. 보통 점심시간은 피크다.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고, 만들고, 집중해서 일하다 보면 마음의 고요함만이 움직이고 있다.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 구경을 한다. 두 번째 방문 손님 얼굴은 낯이 익어 나는 ‘단골’이라고 이름표를 붙인다. 단골에게는 정성 한 스푼 더 나간다. 신체 활동의 장점은 감정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점을 해도 감정 노동은 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편할 때 저절로 미소 띤 얼굴이 된다. 손님이 들어오면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나갈 땐 “감사합니다!” 단순하다. 손님이 들어올 때 환대하고 나갈 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먹을 땐 맛있어서 기분 좋으면 된다. 물어보는 것이 있으면 답하면 되고, 되는 건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 그러면 된다. 너무 따뜻한 마음씨를 함부로 드러내 손님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목석처럼 굴려고도 한다.
점심 피크는 12시부터 서서히 시작해 1시 20분이면 끝난다. 요 1시간가량의 바쁨 속에서 삼매의 꽃을 피워낸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성취감과 보상감, 쾌락의 감정을 느끼며, 인체를 흥분시켜 살아갈 의욕과 흥미를 느끼게 한다. (출처: 나무위키)』어느새 행복의 열기구라도 타고 있는 듯하다. “잡념이 뭐야?” 하게 된다. KBS KONG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가 여유롭게 파고든다. 나도 맛있는 국수가 먹고 싶다. 국수와 밥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