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무렵 유치원에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수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유치원 시절 동그란 자리배치에서 나는 내 옆에 맘에 드는 남자애가 앉길 바랐다. 우연히 마주치길 바라는 설렘, 다른 여자애가 그 옆을 꾀어 차고앉아있으면 미웠다. 처음으로 난 질투심을 느꼈다. 학교에 들어가 보니 나와 다른 목소리, 나와 다른 모습을 띈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종종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림책에 있는 공주와 왕자를 보면서, TV 속 만화를 보면서, 드라마를 보면서 상상하고 꿈에 그리며 행복한 여자의 느낌을 느꼈다. 그땐 몰랐다. 어떤 것인지. '사랑'. 지금 내 나이 36.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온전하게 인정해주는 것' 이란 중간지점에 와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결혼은 하나였다. 사랑하기 위해 결혼하고 싶었고 결혼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다. 그때 나에게 결혼은 남자 친구를 사귈 수 있음의 동시에 인생에서 당연한 것이라 믿었고(지금 생각해보면 믿음이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그걸 믿음이라 정의할 수도 없었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기를 갖고 행복하게 자녀를 키우는 모습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렇게 내 나이 20대로 접어들며 약 만 30년의 시간이 흐르는 중에 인생의 3분의 1을 저런 망상적인 이성관계의 사고에 한치 의심 없이 감정에 사로잡히고, 감정의 잣대를 휘두르고 휘두르며 살아갔다. 나는 그렇게 사랑타령을 하였고 나를 최 극치로 사랑해 주는 남자를 찾고 찾았다. 그러면서도 내 무의식에는 사랑받는 여자가 아닌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꿈꿨다. 20년 넘게 엄마를 보면서 엄마의 역할을 여자의 모든 것으로 일축시켰다. 그래서인지 나는 결혼을 하면 남편이 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아내의 모습은 한쪽 저편에 잊힌 채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는 나의 미래를 그리는 극단적인 혼란 속에서 모순적인 연애활동을 하고 있었다. 늘 1년마다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시작과 끝은 늘 같은 패턴을 이루었다. 매번 나는 나를 사랑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서운함에 밀려 늘 이별을 통보하였다. 내가 거절당하고 거부당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그랬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해보아도 그때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그 사람이 들어주지 않으면 날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 서운함의 원인은 딱 하나, 상대방이 쓰는 시간 투자에서 내가 1순위인지를 늘 가렸다. '무조건 내가 1순위가 아니면 나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야'라는 극단적 사고는 대체 어디에서 발상된 것인가. 나는 사랑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내 뜻에 따라주고 내 말이면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그런 사람을 찾았다.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으면 칼같이 잘랐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적합한 남자인지, 책임감은 좋은지, 가정환경은 어떠한지, 학력은 나와 비슷한지를 고려하며 어느 정도 맞으면 만나면서 또 무조건적 사랑을 시험해보고 아니면 매몰차게 이별통보다. 이렇게 반복에 반복을 하였다.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자존감과 실망감을 반비례로 키우며. 결국엔 내가 믿고 결혼할 사람을 찾느라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해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받으려고만 했지 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함께 주고받고 그사이 고통과 아픔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소소한 행복과 기쁨을 서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결국 무조건적 사랑을 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서야 멈추었다. 내가 앞에서 동화 속 공주를, 드라마 속 예쁜 주인공을 말한 이유다. 결국 나에게 왕자가 나타났다.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어떤 짓을 해도 눈감아주는 그런 사람. 그땐 몰랐다. 그것이 집착이라는 것을.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 내가 끌어당긴 그대로 나타난다. 나만 알고 모든 것을 나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끌어당겼던 것이다. 그는 모든 감정과 생각이 나에게 달려있어야 했다. 화가 나도 나 때문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내 모든 시간과 감정을 통제하려 했다. 나는 그때 그것이 사랑이라 믿었다.
내가 여느 때와 달리 헤어짐을 통보한 것은 그전의 연애와 180도 정 반대의 이유다. 서운함이 아닌 구속이었다. 나는 양면성을 보지 못했다. 시간 속에서 한 사람의 삶이 결정되고 흘러가는데 모든 시간이 내가 1순위 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그 사람의 구속이 이제는 견딜 수 없이 힘들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그런 사람이 내 곁을 떠나는 것이 한편으로는 두렵지만 답답하고 힘들어서 이별 통보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놓아주지 않는 그였다. 그때마다 나는 위험함을 느꼈어야 하는데 더욱 사랑이라고 확신을 가졌다. 자기의 것을 다 포기하고 자신의 삶 속에 나의 삶을 흡수시키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몰랐다. 우리는 다 개인이고 개별적 존재임을 망각한 것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끈으로 진짜 사랑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 보고 싶었다.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했고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그 집착과 구속이 사랑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얼마나 정신적, 육체적 성장을 가로막는지 경험하였다. 생각해보라. 한 거대한 우주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인생 통으로 내 안에 모든 것과 섞이려 할 때의 고통을.
나는 20년 동안 내 삶에 단 한 명의 여자는 우리 엄마였다. 나는 엄마의 역할은 보고 느낄 수 있었지만 아내 그리고 여자의 역할은 몰랐다. 그래서 나는 내 멋대로 환상적인 드라마틱 사랑을 꿈꿨다.
우리는 죽기 전에 진중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다양한 사람과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식견을 넓혀야 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더라도 멈춰서는 안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면서, 나의 것을 내세우고 그의 내세움도 인정해줄 수 있는 고도의 정신적 에너지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을 바탕으로 함께 평행선을 그리며 상대의 길이 조금 흔들려도 부딪히지 않도록 실수와 불완전함이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겠다고 서로에게 책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없는 행복한 결혼생활은 꿈꿀 수 없다'가 나의 생각이다. 요즘 사회에서 사랑과 결혼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힘들다고 느끼고 마음에 아픔이 가득한 젊은 청춘들아, 차갑고 냉정하게 상처 받기 싫어서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보고 들은 엄마의 모습이 다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사랑하는 여자들과 사랑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평생 사랑다운 사랑을 갈구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