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아니면 사랑

결코 집착이 사랑이 될 수 없는 이유

by 와일드 퍼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이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여기기에 '사랑하고 싶은'으로 표현하겠다)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해 '구속'이라는 풀을 얇게 발라 자기 자신에게 성취와 능력의 선물 꾸러미를 이벤트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곤 한다. 자신만의 선물을 꾸미는 과정에서 우리는 '집착'이란 단어를 출현시킨다. 나는 이 글에서 집착이 왜 사랑이 될 수 없는지, 내가 지금 하는 사랑은 집착이 아닐 수 있는지 논증해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집착을 하는 것은 결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선물을 마련하는데 온통 정신을 쏟는 정신병의 일종이란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우리는 집착을 하고 구속하는 이유를 대라면 백이면 백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인 합리적인 생각'에 도달함으로써 내가 아주 괜찮은 사람 같이 느낀다. 누구는 인정 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이미 '널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 난 집착을 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을 한 번이라도 스스로 되뇌던 경험이 있었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 글을 읽고 자신이 지금까지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꼭 마음에 드는 선물을 선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음을 알아차리길 바란다.

사랑, 집착, 구속은 현실 속에서 오묘하게 헷갈리면서도 모순적으로 알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언어의 개념을 살펴보자.

집착은 어학사전 적으로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떨 치치 못하고 매달리는 일'이라 정의되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떨치지 못함'에 있다.

구속이란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속박함'을 뜻한다. 영어로는 1. imprison(신체의 자유를 가둔다)이라 쓰는데 prison(교도소, 감옥)의 단어와 연결되어 있다. 2. restrict- 제한하고 통제하고 방해한다는 의미로써 strict(엄격하고 엄정한, 권위적인)에 re(다시, 재-) 접두사를 붙임으로써 strict의 배가 되는 단어이다. '내가 원하는 나만의 바운더리로 엄격하게 상대를 가둔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바운더리는 곧 상대를 향한 제한적 요소를 지니는 내가 만든 감옥을 말하겠다.


다음으로 사랑이란 단어는 딱 한 가지의 정의로 규정지을 수 없음으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왔을지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우선 '본질'이란 쉽게 섞이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사랑'에 대한 본질적 뜻을 알기 위해서는 첫 어원을 알아보는 것이 나으니까. 물론 처음 인류의 사랑은 신이 인간이 있게까지의 모든 것을 뜻하겠지만 종교적 영역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존재하는 많은 학자들의 추측설을 알아보았다.



사랑은 살다 활 '活'의 명사형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도 있고, 생각할 '思'와 헤아림을 뜻하는 양()'量'의 조합인 '사량'에서 사랑이 유래했다는 설이다. 우리가 사랑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는 만큼 상대를 헤아리려 노력하니 후자의 설이 더 관심이 간다. 저자 이기주 작가가 노트북에 '사랑'을 입력하려다 실수로'삶'을 쳤다는 내용이 아직도 감명적이다. 그러면서 '사랑'에서 받침을 비슷한 모양인 'ㅁ'으로 바꾸면 '사람'이 되고, 모음을 살짝 없애면 '삶'이 된다고 사랑에 대한 단어를 깊게 표현한 적이 있는데, 몇몇의 언어학자는 사랑, 사람, 삶 이 세 단어 모두 하나의 어원에서 파행되었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사람과 함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인간에게 사랑은 결국 전부다.

꽃에게 물을 주는 행위는 사랑한다는 표현이고 물은 곧 꽃에게 사랑인 셈이다. 그런데 물을 주는 행위 안에서 내가 널 사랑한다고 물을 많이 준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널 많이 좋아한다고 내 마음에 드는 큰 화분에 그 꽃을 심고 키우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좋아하는 화분이니까 여기에서 잘 크라고 마음만큼 물을 주고 영양제를 먹인다면 그 식물은 과연 사랑을 받는 것일까? 지금처럼 우리가 식물을 키울 때 그것이 얼마만큼의 물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고 화분을 골라야 함이 마땅하다. 많은 물이 필요 없는 식물은 큰 화분에 심는다면 잘 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사랑한다고 한 것이 상대의 성장을 멈추게 하고, 그 멈춤은 곧 그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게 된다. 이렇듯 나만을 위한 것은 사랑이 아니며 너만을 위한 것도 사랑은 아니다. 왜냐하면 너만을 위하고 나는 늘 희생만 하면서 물만 열심히 준다면 내 앞에 있는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켜볼 수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나의 불행을 의미한다. 그 불행의 불씨가 결국 너의 불행이라는 큰 불로 번져 둘 다 타버리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함께 행복해야 정녕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나는 사랑을 해주는 행위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크게 두 개로 분류해 본다. 앞전에 언급한 집착이라는 마음을 첫 번째 분류 영역이라고 치고, 똑같은 선상에 있지만 반대쪽에 있는 '애착'을 두 번째 분류 영역으로 정해보자. 둘 다 똑같이 대상을 두고 마음을 쏟는 것을 의미하는데 조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애착이란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함. 또는 그런 마음'


을 말한다.

집착에는 '매달림'의 대상인 상대의 마음이 나에게 함께 동요되길 원하고 나를 위한 상대의 행동이 수반되어야 할 것 같은 동사가 존재한다. 애착에는 '떨어지지 아니함'이라는 나의 의지가 상대와 상관없이 담겨있는 동사가 쓰이고 있다. 그리고 집착은 '마음이 쏠리는' 것이 원인이고, 애착은 '사랑하기 때문'이 동력이 된다.

집착하는 사람은 내 마음에 쏠리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볼 수가 없다. 즉, 상대의 마음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도 내 마음에 집중하고 내 것에 집중하려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집착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곧 상대로부터 구속을 당하고 있는지로부터 알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내가 상대의 의사를 제지하고 속박하고 있다면 지금 내가 상대를 인형처럼 손으로 붙잡고 스스로에게 집착하고 있는 '자신'을 즉시 알아차려야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내 감정과 생각을 섬세하게 느낄 줄 아는 것에서 시작해서 상대의 감정과 생각도 섬세하게 느낄 줄 아는 것으로 완전에 가까워진다고 말하고 싶다.

진짜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상대의 아픔을 느낄 줄 알기에, 나의 발전에 노력을 가하든가 그럴 마음이 없으면 기꺼이 떠나보낼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건지도.

그저 바라만 보고, 들을 수만 있어도 그걸로 진정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 자신과 그를 가두려는 어떠한 책임에 속박당하지 말고, 내 마음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자부해도 좋다.

자식을 잃어야만 하는 부모들에게

남편과 아내를 하늘로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부모님을 떠나보내야 하는 가슴 아픈 이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정승호 시인은 말하는 것 같다.


뭐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뭐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뭐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뭐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뭐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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