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을 하는 중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마음껏 편한 자리가 늘 어려웠는데 가까스로 준매니저님들의 수고에 응원해주고자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다들 집에서 살림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하는 큰 책임을 가지고 있으므로 좀처럼 여러 명이 모이는 자리가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B팀장님이 매주 금요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날인데 하필 모두 시간이 되는 시간이 그날이더라. 예배를 드리지 않고 회식자리를 참가하는 것은 나도 원하지 않았기에 천천히 다 끝내고 오라고 일러줬다. 나는 9시 정도나 돼서 도착할 것 같다는 사전 통보를 받은 상태고 당연히 저녁을 챙기지 못하고 바쁘게 오겠구나 생각하여 식사 거리라도 나오는 식당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A팀장이 무언가 맘에 안 들었는지 우선 지금 이 곳에 와서 대충 배라도 채우게 밥 한 그릇 먼저 먹고 다음 장소로 옮기면 어떠냐고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서로의 마찰은 불꽃을 띄었다. 나는 그냥 지켜보았다. 그들의 스타일을 나는 알고 있었기에 서로 어떻게 대화를 하는지, 무슨 의도인지 바라보았다. 우선 마찰이 일어난 이유는 각자의 입장이 있었다.
B팀장: 회식자리이기도 하고 제대로 완벽한 세팅 안에서 먹을거리와 회식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
A팀장: 사적인 일로 늦게 왔으니 우리 분위기에 맞추어서 대충이라도 함께 따라주면 좋은데 B팀장을 위해서 회사에서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여기에서 나의 해석은 B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요구하고 표현한 것이고 그 요구는 내가 들어주거나 거절하거나 둘 중 하나로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A의 감정이다. A가 주체하는 회식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B덕분에 다른 코스에 가서 회식을 즐길 수 있지만 꼴을 보기 싫은 마음의 문제였다. A가 B를 보면서 미움이 발생되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질투가 나고 부러움이 발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저 사람은 잘도 하니 꼴이 보기 싫을 수밖에. 누군가가 맘에 들지 않고 밉다는 것은 나와 같은 모습을 그 상대의 모습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감추고 싶은 나의 모습이 그 사람을 통해서 반영되니 계속 불편할 수밖에.
그렇게 그들의 기싸움은 1주, 2주 계속 커져만 가고 있었다. 사실 B는 아무렇지 않았다. 문제는 A였다. 그러다 보니 미움이 커지고 커지면서 나의 눈에 문제가 잡히기 시작했다. 회식 날 A의 마음을 예측만 할 뿐 원인을 알 수 없었는데 결국 그녀가 가지고 있는 미움의 원인을 나에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5월 휴일에 우연인지 다행인지 그녀의 동네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그녀가 말하기를 또다시 B팀장이 맘에 안 드는 사사로운 사건들과 행동거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들었다. 어떤 행동들이 그녀에게 그렇게 가시처럼 보일는지. 아니나 다를까 이기적인 행동과 자기중심적인 행동들이었다. 일에 있어서 이득 손실을 따지는 사람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B나 A나 똑같은 성향과 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한쪽이 크게 불이 난다는 것에 흥미가 돋았다. 분명 그녀는 자신이 처리하지 못한 자신만의 문제가 있음을 예견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족 이야기로 넘어갔다. 내가 보기엔 그녀는 결혼 12년 차에 접어든 누가 봐도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자신의 가정을 오목조목 잘 꾸려나가는 똑순이였다. 남편하고 아이들과 타지를 이동하면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나가는 모습을 참으로 대견하게 생각하는 그녀였다. 지금까지의 결혼 생활 이야기를 쭉 들어보는 중에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발견되었다. 처음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의 아버지 욕을 한참 들어주던 그녀가 지친 모양이었다. 시어머님도 기댈 곳이 없었고 딸이 없으신 분이라 둘째 며느리의 착함이 너무 편하기도 해서 매일 같이 전화해서 아버지 욕을 하며 한탄을 늘어놓았나 보다. 그러다 다음날 보면 며느리가 나쁜 며느리가 되어있고 어머님은 또 아버지를 용서했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참고 참고 시어머님의 자리를 지켜 주려 하였지만 반복하는 이런 상황이 이제는 B팀장의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으로 자리 잡았나 보다. 그래서 2년 동안이나 연락을 끊고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요즘 시부모님이 전화 와서 애들도 궁금해하고 먼저 연락을 주시면서 사과의 말씀을 먼저 하신다는 거였다. A팀장의 마음은 이러했다.
"그래도 어른이고 시어머님인데 그분의 자리에서 어떻게 며느리한테 위신 떨어지는 그런 행동을 매번 수치심 없이 드러내고 시아버님도 내가 존경해야 마땅할 분인데 시어머님이 아버님 욕을 그렇게 하시니 어머님 또한 너무 존경하기 어렵고 듣기 싫어서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요."
지금 이렇게 다시 곱씹어서 팀장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두 분 다 어른인 부모님인데 어머님이 인간적인 부분에서도 인정할 수 없는 모든 사적인 것들까지 아버님의 욕을 해대시니 며느리 입장에서 너무나 혼동스러웠을 법하다. 그것도 며느리 입장에서 남편을 평생 믿고 살아야 하는데 결혼 한지 5년 차도 안된 새내기 며느리에게 철없는 시어머님도 거기까지 생각을 못한 듯하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그녀가 부모님 사이에서 혼동을 겪은 것이 고통스러웠듯이 분명히 남편도 부모님과 아내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팀 원로 써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가만히 남 보듯이 두고만 있을 순 없었다. 이제 부모가 된 지 12년째 라면 부모가 자식에게 느끼는 마음을 알터인데 계속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 높은 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제는 시어머님을 용서하고 남편의 혼란을 그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의 모든 일을 용서하는 마음과 연결시켰다. 스스로를 인정하기까지 A팀장이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하는 나의 코칭에 동의하기 싫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반항하는 마음으로 대처했고 자존심으로 번져 계획한 일마다 성사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람일이라 사람이 알아보는지 그녀를 아무도 반기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균형 잡히지 못한 원인을 깨닫게 해주는 데 3주가 걸렸다. 결국 나는 어제 그녀의 울음주머니를 터뜨렸다. 1시간을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그 눈물은 나의 말과 생각을 인정하지 못하는 억울한 울음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냉정하게 끝까지 무심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은 사치다'라는 말이 그때 상황이 딱 맞았다.
그렇게 바로 오늘 그녀는 용기를 내어 시어머님께 전화를 하고 사랑을 베풀었다.
이제부터 그녀는 완벽하지 못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보아도 그것을 과정으로 여길 줄 아는 마음의 공간인 '여유'를 가진 것이다.
" 속이 후련하고 너무나 떳떳해진 느낌이에요!! 좋게 보니 나쁠게 하나도 없는데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아요.
자존심 부린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내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게 해 준 어머님인데 그런 걸 몰라서 감정적으로만 굴고 괜한 자존심 부려서 괴로웠다고 말했어요. 자기 계발 책 보면서도 항상 마음이 불편했고 아침 미팅 시간에도 듣기가 거북했는데 마음먹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너무 감사합니다."
"팀장님, 용서해본 사람은 이제 모든 걸 가진 거나 마찬가지예요. 누구를 용서할 줄 안다는 것은 나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스스로를 용서했다는 거예요. 그것이 진정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너무 완벽하려고 하지 마요. 아주 위대한 일을 하셨어요"
일기예보는 자주 빗나간다. 그렇더라도 비예보가 뜨면 우산을 챙겨 들고나간다. 맑은 날이건 흐린 날이건 외출할 때 꼭 챙겨야 할 우산이 있다. 바로 자존이다. 사람들은 이 호신용 마음을 자존심, 혹은 자존감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과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존심은 경쟁 관계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고,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자존감은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 방패다. 언제 어디에서 매복한 적군의 화살이 날아올지 모른다. 내 방어력이 최고치일 때 화살은 상처를 입히지 못한다. 문제는 내 자존감이 바닥났을 때다. 화살촉에 묻은 모욕감이라는 독은 내 몸 안에서 죄책감으로 퍼진다. 화살을 쏜 적병의 책임이 아니라 피하지 못한 나의 책임이 된다. 자기 비하는 스스로를 열패감에 빠트린다. 감각 마비처럼 정서 마비가 일어나고 삶은 빠르게 자기 연민 모드를 작동시키고 모든 의욕을 놓아버린다. 공공의 적들은 집요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존에 상처를 입히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그러므로 자존감은 늘 충전돼 있어야 한다. 자존감은 나를 방어하는 데에도 쓰이지만, 선량한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데에도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