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에 오는 용기

누구에게나 선물이 있다.

by 와일드 퍼플

내가 가슴에 품고 순간마다 되새기는 시가 한편 있다. 2018년 2월 첫 상영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1부작은 감우성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정승호 시인의 <봄길>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 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누구나 살다 보면 갈길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아 두려운 순간이 있다. 나에게 하늘이 메시지를 주는 듯 들렸다. 첫 시작을 왜 <봄길>로 했을까. 감미로운 감우성의 목소리 덕분에 '봄길'의 글귀가 귓가를 더 맴돌았다. 내가 좋아하는 김선아와 감우성이 주인공이어서 흥미로웠다. 김선아는 하나밖에 없는 6살 딸을 억울하게 사고로 보내고 누구 하나 자기편이 없다. 모든 것을 잃은 그 모습이 그때 내 모습을 반영했다. 이혼녀라는 것. 가진 재산 하나 없다는 것. 그러나 나와 그녀의 다른 점은 나에게는 건강한 두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자니 내가 한때 아이들을 어떻게 내가 혼자 키울까 두려운 걱정을 했던 순간들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봄길'을 읊어본다. 모든 것에는 길이 있다고, 사랑이 끝나도 스스로 사랑이 되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정승호 시인은 말한다. 사람들마다 깊은 인연을 만나고 떠나본내는 그 여정 속에서, 남아있는 책임과 대가는 모두 다 다르겠지.

사랑하지만 서로 힘겨웠다. 힘겨워서 이것이 사랑인지 의심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이 아님을 나는 알았다. 독립의 두려움이 4년의 시간동안 깊게 생각할수 있게 해주었다. 안순진에게는 잃은 자식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두 명의 딸, 아들이 있다. 계약은 또 다른 계약으로 삶을 교정하면 되었지만 아이들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돈은 다시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두 아이를 키워나가야 할 현실적 공간과 생활비가 필요했다. 나는 경력 단절녀로써 자신감을 잃고 프리랜서로서 교육사업을 배우고 있었기에 매달 월 수입을 계획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더 이상은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면 육체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것 같은 판단으로 스스로 내린 결정에 무조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재산분할도 할 것 없이 재산은 없었고, 그렇다고 뚜렷한 경제능력이 없어서 나의 양육권이 박탈당할까 봐 두려웠다. 아이들의 실질적 양육자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고, 난 그곳에서 벗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허락만 해준다면 올바른 일을 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마음먹기까지 4년이 걸린 샘이다. 세상 경험 없이 대학 졸업하고 몇 번의 연애 경험과 안전한 곳에서 안전한 월급 받으며 고작 5년 일해본 것이 전부인 나는 세상의 어떤 현실적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지식, 정보에 무지했다. 그런데 이제부터 내가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오늘이, 한 달이 겁났다. 이혼은 내가 원했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와야 했다. 그때 5살, 6살 연년생 자녀를 키웠고 일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의 자본금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무것도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내 능력의 가능성과 의지가 전부였다. 그때 가슴에 새긴 한 명언이 있다.

"자기에게 없는 걸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겁니다. 기도 속에서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되면 그 깨끗한 마음을 주고, 마음을 가라앉혀서 평화로워지면 그 평화를 주세요."

 노벨 평화상을 받은 테레사 수녀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당장 줄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과 올바른 가치관밖에는 없다고 여기고 세상에 뛰어들었다. 나는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어서 무슨 수를 써서 나는 지켜야 했다. 내 마음을 세우고 균형적 감정을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밤새 공부했다. 아이들이 상처되지 않도록 매일 밤 책을 읽어주며 다양한 삶을 간접 경험시켜주었고, 교육 전문사업의 으뜸이 되는 것에 목숨 걸었다. 매일 밤 기도했고 써 내려갔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후 그때 기도 했던 것을 이루었다.

헤어지면서 모든 감정의 끈을 전부 깨끗이 끊었다고 자부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감정이 남아있다. 아이들의 가족으로서 잘 되길 바라는 마음, 건강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비록 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기도한다. 나는 그를 존중한다. 아이들의 하나밖에 없는 아빠로서 대체 불가능한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서로에게 부족했던 것을 타이밍, 운, 상황들이 뒤 썩여 벌어진 것이기에 누구의 탓도, 잘못도 논하고 싶지 않고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스스로 치유한 그 이상으로 그도 치유하고 잘 살길 비는 마음을 아이들에게 기도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자존감을 높여 양육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독서다. 그래서 나는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책 읽기와 글쓰기를 권하고 있다.

이별하고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서 스스로의 생명력을 죽이지 않기를 바람으로 이 주제를 써본다. 당장의 현실적 문제 때문에 중요한 것을 외면한 채 살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는 존재다. 살아있어서 헤어지나 죽어서 헤어지나 우리는 어차피 우주의 한 일부고 죽어서도 우주의 일부가 된다. 최선을 다 해보고 또 해보고 또 해봐도 내 가슴속이 계속해서 외치는 것에 귀 귀울여 들으려 애써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완전체가 아님을 인정하자.


이별의 경제학 -림태주-

살면서 잘해야 하는 일이 참 많다. 그중에 정말로 잘해야 하는 일이 사람을 받아들이고 보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받아들이고 보내는 일을 두려워하면 외로워지고, 보내는 일에 서툴면 괴로워진다. 이 두 일은 인과관계여서 받아들일 때 신중하고 내보낼 때 과감하면 좋을 텐데 거꾸로 해서 힘들어지기도 한다. 몇 차례 겪어봤으면 다음번에는 쉬워야 할 텐데, 여전히 처음인 듯이 이별은 어렵다.

그때는 20세기의 이별 방식으로 헤어졌다. 그때의 이별 풍경은 볼만했다. 식음을 전폐하며 몇 날 며칠을 괴로워하는 건 하나의 유행이었다. 사랑이 끝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던 세기였으니까. 바닥이 드러나도록 울고 나면 투명해져서 보이는 게 있었다. 이별을 대하는 나의 자세 같은 것. 애도라는 것이 떠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벌이는 제의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혼자가 된다는 건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간가가 곁에 있을 때도 곁에 없을 때도 사람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잠시 혼자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있을 뿐이다. 난 혼자라는 분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시리고 쓰라리다. 이 쓰라린 통증이 스물에도 오고 서른에도 오고 마흔에도 오고 죽는 순간에도 찾아온다. 앞으로 겪어야 할 이별이 아직도 우리에게 한참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삶에 정답이 없듯이 이별에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자연스럽게 만났으므로 헤어짐도 자연스러운 것이 이별의 최상급이 아닐까 생각해볼 뿐이다. 이별은 삶이 맞닥뜨린 격변 상황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상사 중에 하나다. 만남도 이별도 순환열차처럼 관계의 궤도를 돌뿐이다.

언젠가 시골 농부로부터 들은 말이 있다. 그가 경작하는 농장에는 작물을 심지 않고 비워둔 밭이 있었다. 왜 아까운 땅을 묵혀뒀느냐고 물었더니 땅도 쉴 때가 있어야 한다고, 휴경 기를 가진 땅이 더 풍성하고 알찬 곡식을 맺는다 했다. 사람의 이별이란 것도 일생의 궤적으로 보면 잠시 맞이한 휴경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별을 준비할 때마다 나는 경제학을 떠올린다. 이별만큼 감정을 많이 소비하는 때가 없으므로 본능적으로 효율을 따지게 되는 것이다. 이별에 막대한 감정을 투자하는 만큼 획득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소비가 아니라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생은 우리를 관통해 지나간다. 이별의 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슬픔의 경제활동, 그 통증의 시간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른 때보다 더욱 선명하고 치열하게 많은 것들을 알게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내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관계를 이루어야 더 자주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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