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잘한 것은 '독서'다. 사실 내가 어떠한 멋진 결과를 기대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죽을 자신은 없어서. 이혼할 자신이 없어서 읽었다. 내 마음을 의지할 곳이 없었다. 친구도 돈도 없었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도 없었다. 난 그저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 24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최고의 소통이었다. 그때 아이가 18개월 34개월. 연년생을 낳아 기르면서 내 마음을 이해하며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공감 아닌 불안감만 드러내는 사람뿐이었다. 내가 결혼생활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호소하면 여유 있게 들어주기보다는 '네가 더 잘해라'라는 말만이 되돌아오곤 했다. 그것이 더 내 마음을 아프게 했고 나 때문에 이렇게 되고, 결국 내 잘못으로 더욱 나의 존재의 가치가 바닥으로 내쳐지곤 했다. 그때 나의 괴로움은 늘 책을 내 손에 쥐어주었고 100명이 넘는 스승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홀로 애쓰는 나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주는 작가님들로부터 독립을 배웠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사랑을 배우고 사람을 배우고 삶을 배웠다. 물론 지금도 배우고 있다. 답은 늘 찾는 것이고 나에게 무엇보다도 기쁨은 '배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5년째 '늘 배울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직도 10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만약에 그때 내가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그때와 똑같겠지. 가장 무섭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다를 것이 없는 나라니. 세상, 오! 마이 갓!이다.
내 인생을 책과 연결해준 초기 스승이 있는데 나는 멘토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이지성 작가다. 그때 그분이 추천해주는 책뿐만이 아니라 저서들을 모두 읽어 내려가면 결국 나는 고전 읽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 이지성 작가는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고전을 읽다 보면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그 저서를 남긴 사람의 영혼을 느낄 수 있고 그 영혼이 곧 나의 지혜가 된다고 확신을 주었다. 공자의 <논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플라톤의 <국가>, <소크라테스의 향연> 등등 아직도 아이들을 재우고 필사했던 그 책을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공무원, 자격증 공부도 아닌 고전 필사 하기는 누가 봐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나는 묵묵하게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을 빌어 무조건 필사했다. 그렇게 4년 후 나는 경제적 능력이 생겨났다. 경제적능력 0원에서 이혼하겠다고 무조건 뛰어들었던 직장에서 연봉이 3500이라면 지금 6년 후의 연봉은 현재 1억 2~4천만 원이다. 그리고 자유가 있어 행복하고, 절제를 통해 삶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만족한다. 하지만 지금의 그대로가 10년 후의 내 모습은 아닐 것이다. 나는 계속 꿈을 꾸고 꿈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