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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69

2024년을 보내며

by 제리

액운이 낀 불길한 숫자라고 어른들은 아홉 살이 들어가는 나이를 경계하라고 했었다. 쉽게 말하는 아홉수다. 올해 내가 그 아홉수에 들었다. 뒤돌아보니 열아홉에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으로 나갔으며, 스물아홉엔 시집살이에 시달렸고, 중풍으로 칠 년 동안 누워계시던 시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홀가분하게 자유로워진 해에 난 서른아홉이었다. 그 해에, 얼어 죽은 사과나무를 베어내고 지어 살던 삼십 평 집을 팔고, 한 층 반 높이 아치형 거실 천장에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아름다운 육십 평짜리 언덕 위에 하얀 이층 집을 샀다. 방 네 개를 뺀 바닥 전체가 대리석이었고 유리문은 셔터까지 장착한 독일 창호였다.

대지 이천삼백 평. 봄이면 완만한 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서부터 집 앞까지 영산홍과 철쭉 천이백 주가 한꺼번에 피어 불타는 듯이 뒤덮였고, 가을 날 밤꾼이나 도토리 따는 사람들이 길이 끝나는 우리 집 마당에 당연하다는 듯이 차를 세우고 산으로 올라갔다. 창고 옆에 청삽사리 한 쌍, 앞마당 잔디밭 끝엔 누렁이 한 마리가 묶여있었고, 작은 키에 다리까지 짧은 제리는 풀어놓아 잔디에 배를 쓸리면서도 신나게 뛰어다녔다. 집안에는 주방옆 다용도실 수챗구멍으로 생쥐가 드나들까 봐 오일장에서 오천 원에 사 온 하얀 배에 회색 등, 코에 깜장 점 하나 찍힌 고양이 나비가 있었다. 아이들은 말썽 없이 건강했으며 살던 중 가장 편안한 때였다. 너무나 더웠던 그 해. 더위를 피해 우리 집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뒤치다꺼리에 살림이 거덜 날 지경이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반갑게 받아들였다. 거실 창문에서 보이는 잔디밭 끄트머리 모과나무 옆, 집채만 한 바위 앞에 한 삽 떠다 심은 붓꽃은 해마다 몸집을 불려가며 피었고, 비 오는 날 촉촉하게 젖은 한 아름 청보랏빛 붓꽃 더미를 내다보며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 마실 때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산에서 다래나무 한 포기 쑥 뽑아다 바위에 올렸고, 집 뒤편 골짜기 물길 공사하는데 기웃거리며 포클레인으로 파 버리는 아가위나무도 한 그루 얻어다 심었다. 고추도 백 포기 심고 오이 토마토 상추도 잘 길렀다. 멀리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마당 끝으로 빙 둘러 소나무 백오십 주를 심어 솔밭을 만들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동네 사람들이 솔잎을 뽑으러 산으로 가지 않고 바구니를 들고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공들여 가꾸고 다듬어 아들한테 넘겨 손주를 기르고 싶었던 그 집을 남편이 날려먹었다. 디스크 수술도 했다.

마흔아홉 살이었다. 태연하고 편안한 얼굴을 믿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한동안 얼이 빠져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니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분노를 가라앉힐 길은 그 원인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었다. 죽이자! 난 마음먹었다. 큰길 옆엔 농업용수로 쓰이는 저수지가있었다. 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그 저수지다. 늦은 밤 희끗희끗 달빛에 비친 물이 넘실거리는 저수지 옆을 운전할 때는 으스스 한기가 들 정도로 무서웠다. 저기다 차째 밀어 넣고 실종신고해버려야지! 이를 갈며 한시바삐 모내기가 끝나고 저수지에 물이 차길 기다렸다. 드디어 큰 비가 줄기차게 쏟아졌고 저수지는 넘실넘실 물이 가득 찼다.

난 여전히 말 한마디 없이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묵묵히 밥하고 빨래 하면서 적당한 날짜를 찾고 있었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패 죽이고 싶은 웬수 같은 인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꼬박꼬박 내가 한 밥을 먹었다. 며칠 안에 끝내야 한다. 내일? 모레? 벼르면서 가만히 쳐다보니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저수지 깊은 물속으로 처박아야 할 웬수가 내 자식의 애비였다. 아이들 한텐 뭐라고 둘러대나.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며칠 동안 끙끙 앓다 죽이는 대신 이혼으로 가닥을 잡았다. 숨죽이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말을 끝까지 듣고 남편이 차분하게 말했다. 이혼은 언제라도 할 수 있으니 넉넉한 위자료로 마음의 빚을 갚을수 있게 시간을 좀 달란다. 이혼은 타이밍인데 번드르르한 말에 속아 기회를 날렸다.


가끔은 잘 정돈된 단정한 아파트가 좋아 보일 때도 있기는 했다. 마당에 풀 뽑다가 지쳐서 '나도 닭장에서 한 번 살아보자' 했었는데 농담처럼 한 말이 씨가 됐을까, 준비없이 느닷없이 상황에 내몰려 아파트로 옮겨앉았다. 내가 원했던 건 꽤 괜찮은 동네에 널찍한 닭장이었는데, 현실은 그저 그런 동네에 달걀 껍데기에 4번 도장이 찍힐 것 같은 닭장이다.

예순아홉 살이 된 올해는 우여곡절 끝에 브런치에 이름을 올렸고, 토요일에 '글을 써'라는 알림이 울릴 때마다 움찔 놀래 허둥지둥 글 한 편을 찾아올린다.

내 어머니 탯줄을 잡고 세상에 나온 삼남 오녀 중 네 살 터울 오빠와 나만 남았다. 나머지 여섯 남매의 평균수명이 채 스무 살이 되지 못하니, 설령 이번이 마지막 아홉수라고 해도 별로 아쉬울 것 없이 오래 산 셈이다. 불길함의 대명사라던 아홉수에는 나쁜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었으니, 숫자와는 상관없는 그저 내 삶의 굴곡일 뿐이었다.

올해는 여름 내내 단물이 줄줄 흐르는 황도를 냉장고 과일 칸에 가득 채울 수 있어서 좋았고, 뒤미처 샤인머스캣으로 채울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그래서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냐고? 그건 아니고 과일값이 싸진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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