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대하는 자세

휩쓸리지 않고 강을 건너는 법

by 에스더

아프리카의 한 부족에서는 강을 건널때 돌을 안고 걷는다고 한다. 물살도 버거운데 무거운 돌멩이까지 안고 건넌다니. 왜 그러는 걸까?


매일 아침 6시 반에 알람이 울리지만, 7시 5분 전이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나의 하루는 피곤으로 시작 한다. 그리고 눈을 뜨는과 동시에 마치 가려움증을 겨우 잠재워놨는데 어딘가에 스치면 다시 시작되는 아토피처럼, 피가 나도록 긁어도 해소되지 않는 지긋지긋한 불안이라는 가려움증도 함께 깨어난다. 내가 하루 동안 안고 있어야 할 내 돌덩이들이다.


초등 저학년 시절 나의 별명이 수도꼭지라는 걸 1반부터 6반까지의 담임선생님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울보였다. 누가 말만 걸어도 혼낸다는 생각에 눈물부터 쏟아내는 그런 불안도가 높은 어리숙한 아이였다.


그 눈물 찔찔이였던 그 소녀는 지금 억척스러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하루에도 수십 통씩 해외 바이어들과 통화하고 그들을 설득하며 밥벌이를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렇게 연약하고 깨질 것 같은 어린 나에게 신은 무엇을 주었을까?


나에게는 초중고등 12년을 통틀어 단 한 번의 결석(질별포함) 지각, 조퇴가 없는 개근상장이 있다. 새벽 장사를 하시는 어머니가 없는 아침을 스스로 챙겨 등교를 하였고, 아무도 없는 교실의 첫 불을 켜는 사람은 항상 나였다. 수업 중 갑작스러운 복통에 엄마 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을 때도 약 처방을 받고 걸을 수 있는 것을 확인한 엄마는 이제 좀 진정된 딸을 집이 아닌 3교시가 끝나가는 교실로 데려다 놓으셨다. (엄마는 일하러 다시 복귀를 했야 했기 때문에) 복통의 여파를 엄마가 쥐어준 알약으로 달래며 방과 후 수업까지 끝나고 나서 걸어서 귀가를 하였다. 나의 학창 시절은 그렇게 사사로이 아픈 날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고, 어지간한 일들로는 내 일상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성실히도 살아가는 게 기본값이었다.


나에게 뛰어난 두뇌와 당찬 자신감이 있었다면 이런 겸손한 성실이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완성되는 작은 것들을 모아 들여다보면 그제야 비로소 한발 조금 더 내디뎌 볼 용기가 생긴다. 그 용기로 아주 조금 더 나아가보고, 다음 단계를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고, 그렇게 이어지는 다음 단계들이 비로소 진척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결국 그 결과들이라는 것은
아주 미미했던 성실들로
점철된 것들이라는 것.


아프리카 원주민이 강을 건널 때 안고 있던 그 돌은 센 물살에 휩쓸리지 않게 무게중심을 잡는 용도라고 한다. 어쩌면 인생에서 우리가 하나씩 안고 있는 그 돌은 이런 불안들이 아닐까 싶다.

짊어 지고 있기 버거워도, 나를 흔드는 인생의 더 큰 풍파에 휩쓸리게 해주지 않을 배 밑의 바닥짐 같은 것.





첫 아이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가 생각난다.

'속이 왜 이렇게 안 좋지' 하며 아침을 시작하였다. 찬물도 마시고, 앉았다 일어났다 몸을 움직여 보아도 묘하게 지속되는 넘실거리는 울렁거림이 배 속 어딘가에서 내 심기를 불편하게 건들고 있었다. 아침에 시작된 울렁증은 점심을 먹고 배가 불룩해지자 조금 약해졌지만, 이렇게 속이 꽉 찼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통배를 타고 있는 듯한 멀미는 말끔히 없어지지 않았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없어지지 않는 멀미라는 게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지? 살면서 느껴본 적이 없는 이 불편함. 그렇다고 못 참을 것 같지는 않은 거슬림. 그렇게 하루 종일을 꼬박 사라지지 않은 이 그것의 정체를 퇴근시간이 다 되어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토하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 강도의 멀미는 아닌 그저 배속 아래아래쪽에서 신호만 보내 듯 참을 수 있을 듯 못 참을듯한 그 경계를 왔다 갔다 했다. 아이 계획은 적어도 2-3년 후쯤이 아닐까 막연했고, 입덧이라는 것은 들어만 봤지 경험해 본 적이 있었어야지. 임신일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퇴근 전 이 사실을 신랑과 공유를 했고, 신랑은 집에 먼저 와서는 나에게 임신테스터기를 건네주었다. 그 순간 알았다.


아, 나 임심 한 거구나.

2개의 임테기 모두에 나타난 선명한 두줄.

내 안에 작은 아기집을 틀고 3주가 된 첫째가 심장을 만들고 있었다.

인내심이 조금이라도 더 소진되었더라면 큰 후회 할 뻔했다. 약국으로 튀어 가게 하지 않을 정도의 멀미였다니, 어미의 인내심의 한계를 알기라고 하듯 그 발걸음을 하지 않게 한 게 한 것이 감사하고 신통했다.


토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멀쩡하지도 않았던 그 불쾌한 입덧은 새 생명이 태어났고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이자 절차였다. 이토록 불편한 입덧처럼 불안이라는 녀석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낯선 감정이다. 어느 날은 내 속을 뒤흔드는 뱃멀미처럼 다가왔다가 결코 넘치지 않을 경계선 어딘가에서 나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내게 매일같이 찾아오는 이 불안도 무언가가 내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하면 조금은 예쁘게 봐줄 만하다.


그 흔들림이 나를 쓰러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더욱 살게 할 것임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흔들리면서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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