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적 용기
수학을 잘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어서 그 영화를 본 것은 아니었다.
수학이라는 원초적인 학문과 영화가 어떻게 연결 지어질 수 있을까, 영화계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최민식이라는 배우는 그곳에서 무슨 역할로 나오는 걸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몇 해 전 본 영화이다.
5학년, 2학년이 된 우리 집 남매 둘은 수학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경제학과를 나온 어미가 초등 수학 하나 못 가르칠까 학원비 좀 벌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엄마표 수학을 시작하여 5년째 이어오고 있다. 처음 시작은 한 학기에 디딤돌 기응(기본응용) 1권 정도만 꼼꼼하게 복습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목표는 매일 4쪽.
애가 아프지 않은 한 주말이든, 어디 놀라 갔다 오든, 4쪽 정도는 양치를 하듯 반드시 끝내야 잠자리에 들 수 있는 루틴을 만든다는 목표로 이어 왔다. 나아가 한 달 '학습계획표'를 만들어 공부한 페이지를 명시해 놓으며, 어영부영 흐지부지 넘어가는 하루가 없도록 매일 확인을 하고 사인을 하였다.
하루 이틀 양치 안 한다고 충치가 바로 생기는 게 아니지만 뜨문뜨문 하는 양치가 치아를 소홀히 생각하게 하고, 방치시키기도 하고, 썩어가는 걸 감지하지도 못하게 하다가 1년 뒤쯤 치아의 신경까지 썩어버리게 하는 것과 같이 공부에 있어서도 ‘공부가 소홀히 되는 일’을 가장 경계하려 그런 계획표를 만들었다.
남자아이지만 순종적이고, 섬세한 성격의 첫째의 학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아이에게도 변화 없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이 귀찮은 일이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어떻게든 공부를 빼거나 줄여 보려는 꼼수를 부리다 혼날때도 많았다.
울고 불고 하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붙들기를 수천번, 5년을 했어도 저녁 학습 시간은 크든 작든 진통 없이 지나가는 이상적인 하루는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과 고단함이 버무려진 수많은 저녁 시간들이 매일 다가왔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단 한 번도,
어쩌면 그런 진통이 있을수록,
학원에 더 못 맡길 것 같았다.
확 김에 '너 이럴 거면 내일부터 학원에서 배워'라고 협박을 안해본건 아니다. 그래도 학원으로 보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 협박 또한 정말 하다 하다 숨이 턱까지 찼을 때 일 년에 1~2번 나오는 나의 마지막 카드였지, 진짜 학원에 간다고 할까봐 자주 쓸 수도 없는 카드였다.
그럴때마다 그래도 엄마랑 하겠다고 말하는 아이가 속으로 고맙고 안심하고 있었다.
나는 별도 달도 다 따다 주는 엄마이지만
이것만은 양보 못한다는게 그날 해야하는 공부루틴이었다. 아이도 2년을 지켜봐 왔는데 애초에 단념을 했을 거다. 그런 시간들이 2년쯤 지나오니 30분이면 기본문제 페이지를 6~7쪽을 수월히 끝낼 수 있고, 응용 심화 문제 페이지는 1시간이 넘는 시간을 완수할 수 있는 끈기와 당연한 일상이 만들어졌다.
학교 진도를 추월하지 않는 선에서 공부를 했기에 매일같이 풀어내는 문제집은 복습할 문제 수가 부족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의 소소한 약진의 냄새를 맡은 어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어떻게 놓칠 수 있을까.
매일을 기다려 온 아이의 성장의 순간을. 2학년이 끝날 때쯤 최상위 문제집을 풀자고 권하였다.
그땐 몰랐다.
최상위 문제집을 집에 들인다는 건, 2차 대전의 서막을 여는 것이라는 걸.
단원 마지막 2~3페이지에 장식되어 있는 High level 문제들은 그야말로 한두 문제 가지고도 1시간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기본 개념을 다시 뜯어보고, 문제만 수십 번을 곱씹어 읽어 보아도 그동안 얕은 심화응용문제 수준까지만 끌어 올려봤던 아이에게 경시 수준의 문제의 허들을 넘는 건 고통 그 자체였다.
늪에 빠져 있는 어린 자식 옆에서
나는 뭐를 하고 있었을까?
문제를 다시 같이 읽어주는 일,
어떻게 풀면 좋을까 생각해 보는 척하는 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단서가 될 만한 조건을 살짝 흘려주는 일,
혹시라도 질문을 할까 아이 앞에 1시간이고 2시간이고 함께 앉아 있어주는 일.
이것밖에 안 했다고? 애가 늪에 있는데?
날파리 날리고 있는 설거지 더미를 뒤로 하고 하염없이 흘러가는 귀한 저녁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싶은 어미는 없다. '이것만 해야 하는' 어머의 속은 천불에 타들어가지만, 이것만 해야 하는 게 내 몫이기도 했다.
결정적인 물꼬를 터주고, 친절한 설명으로 빠른 해답을 찾아 주는 것만큼 그 귀한 저녁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었다.
문제를 풀기 위한 '첫번째 물꼬'를 트는 일은 어떻게해서든 아이가 스스로 찾아야 했고, 그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기다리다 안되면 다음날로 그 문제를 넘기고, 일주일 뒤에 다시 보기도 했다. 어쨋든 '그 문제는 너의 문제다'라는 각인을 끊임없이 인지 시켜주었다.
마침내
송골송골 땀이 맺힌 코망울을 치켜들며 환희에 찬 표정으로 "풀었어!"라고 환호하는 아이에게 난 그저 대학 입시라도 성공한 듯 극강의 감탄과 칭찬을 무한히 퍼부어주는 일이 마지막 피날레였다.
"이걸 어떻게 풀었어??"
"수학천재가 여기 있었어"
"엄마는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엄마보다 백배, 만배 낫네"
아이와 문제를 철저히 혼자 마주하게 하는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천금과 같았다.
호들갑 떠는 혼신의 연기를 하는 어미를 진정시키며, 그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시키지 않아도 수학자가 된 듯 치열했던 풀이과정을 방언 터지듯 늘어놓는다. 그럼 난 ‘네가 킹왕짱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칭찬만 날려주면 끝이다. 그렇게 최상위의 문제 하나하나가 어렵게 어렵게 내 아이의 몸의 일부처럼 박제된다.
내가 이 아이를 그토록 붙들고,
수학이라는 과목으로 정말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뭄의 단비와 같이 최상위 여정에 이렇게 소소한 성취의 순간을 맛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 과정은 그 열매를 맛보기 전까지는 언제나 쓰디쓴 자갈밭이다. 내 아이는 High level 허들이 깔려 있는 그 자갈밭을 내일도 모레도 내가 없는 곳이든 내가 있는 곳이든 오롯이 혼자서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아이에게 나는
‘용기'를 내보라고 말해주기로 했다.
수학을 잘하기 위해
노력도, 끈기도, 재능도 아닌,
가장 유연하고 말캉한 그것 ‘용기'를 알려주고 싶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나오는 북한 수학자 최민식은 돈도 없고, 재능도 없는 가난한 고등학생에게 수학자로서 이런 조언을 건넨다.
수학을 잘하려면
제일 중요한게 뭐인지 아니?
"머리겠죠, 뭐"
"머리 좋은 아새끼들이 제일 먼저 포기한다."
"그럼 설마 '노력' 이런 건 아니죠?'
"그 다음으로 나자빠지는 놈들이 노력만 하는 놈들이야"
"그럼 뭔데요?"
"용기"
"아자! 할 수 있다. 이런 거요?"
"그건 객기고.
문제가 안 풀릴 때는 화를 내거나 포기하는 대신에,
엄마표 수학과 영어를 첫째가 고학년이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지만, 전문가도 아닌 내가 어설픈 지식으로 내 아이가 기관에서 체계적으로 학습 받아야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은 힘든 저녁 학습 루틴과 함께 매일같이 찾아 왔다.
아이와 실랑이하는 하루하루가 지칠때마다 문밖에 여기저기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학원이라는 안락한 그 곳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
하지만, 아이도 나도 책육아 포함 1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고성이 밖으로 세어나갈지언정 죽이되든 밥이되는 집에서 둘이 죽도 밥도 만들며 해결해왔다. 아이와 부대끼며.
초등시절까지 학원 보낼 생각이 없었던 강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수학이든, 영어든, 독서든
무언가 빨리 성과가 나온는 것을 경계하려 했고,
지금당장 레벨 테스트를 통과하거나, 화려한 선행학습을 하는 것 보다.
어린 시절 10년은,
그 고독한 과정을 어미라는 품에서
용기와 자존감이라는 몽글몽글한 가치로 꽃 피우길 바랐다.
어차피 성과라는 것은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니깐.
어려운 문제 앞에서 겁먹거나 쓰러지지 않고,
내일도 모레도 '될 때까지 해보지 모' 라는 겸손하고 여유로운 '용기'를 쌓아가길 바란다.